태풍과 코로나 19로 북한 가족들, 생활비 요청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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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북한 황해남도 태풍 피해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옥수수밭에서 강풍에 쓰러진 줄기들을 정돈하는 모습.
사진은 북한 황해남도 태풍 피해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옥수수밭에서 강풍에 쓰러진 줄기들을 정돈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성시대 이원흽니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의 북한이 올해는 코로나19로 국경을 폐쇄하면서 식량 조달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폭우와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힘들 것이라고 탈 북 민들은 전합니다.

김: 북한이 피해를 본 지역은 많아 보여요 전에 저희가 어렸을 때도 토사가 밀려 내려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소 토지를 하면서 나무를 다 잘랐기 때문에 토사가 밀려내려 오는 것이 엄청나거든요 그러면서 마을과 심지어는 철길 까지도 끊어 놓는 일도 있었어요

여성시대, 자유와 인권을 위한 탈북민 연대 김태희 대표와 함께 합니다.

음악:

올해는 거대한 태풍마저 겹쳐 고난의 행군 시기가 떠오른다고 김 대표는 말합니다.

김: 태풍이 오면 거기에 동원되는 군인들과 학생들과 그 지역 주민들이잖아요,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지역주민들이고 북한 형편에 태풍이 집안을 다 덮치면 물건을 다시 산다는 것도 힘든 일이고 한국도 태풍의 피해를 입었을 때 소들이 지붕위로 올라가고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는데 북한은 사실은그보다 더 심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일은 북한에 있을 때 어린 시절부터 겪어 익숙하다고 말합니다.

김: 돼지가 물에 떠내려 온다던가 소가 밀려 온다던 가 그리고 농사 지은 호박이 둥둥 떠내려 오고 이런 상황을 저희는 많이 보고 자랐어요, 축이 무너진 곳을 어른들이 와서 같이 하고 그랬는데…

북한의 치산 치수 정책은 김 대표 지난 시절보다 지금이 더 형편없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그때는 김일성이 산에 나무를 심었거든요 그래서 식수 절이라고 있었어요 6월달에 식수 절이 있어서 그때는 꼭 우리가 나무를 심고 해서 그 푸르고 울창했던 산이 이제는 사람들의 손 발이 닿는 곳은 다 개간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한민국에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태양광을 설치 하면서 나무를 베어냈기 때문에 거기서 흘러내린 토사가 많다고 보면 됩니다.

더구나 북한은 비탈진 산에 땅이 조금만 보여도 나무를 베어내고 밭을 일구었던 거죠.

김:북한은 소 토지를 하면서 나무를 베었기 때문에 거기서 흘러내린 토사도 굉장합니다. 지금 보면 현정부 들어와서 북한과 비슷하게 메치 되는 것이 많아서 안타깝죠

이런 상황에서 아무래도 장마당이 축소 되니까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 물품이 들어오는 루트, 통로가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통해서 밀수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 많고 북한 같은 경우는 태풍으로 차량이 움직이고 하는 것은 한국만큼, 그리고 다른 나라 만큼 물자를 옮겨 오는데 조건이 안되어 있는 일이 더 많죠 그런 상황에 사람들이 시장에 가야 되는데 비가오면 아무래도 시장에 나오는 숫자도 많이 줄어들고….

북한은 단속원이 장마당에 떴다 하면 팔던 물건을 한꺼번에 몰아서 우선 도망부터 친다고 해서 메뚜기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요.

김: 지붕이 다 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사실 메뚜기 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장에 나가야 되는데 비를 피하기 위한 간이 막이 설치 되지도 않는데 물건을 팔기 위해 장에 나갈 수도 없는 거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힘들고 이런 상황이 있지 않을까 ? 북한도 시내는 그런대로 장사를 하면서 유통을 하면서 먹고 살 수는 있는데 농촌에는 유통이 안되어요

북한은 도시의 장마당에서도 물건이 자유롭게 유통이 안되어 시골에서는 너무 힘들게 생활을 했다고 전합니다.

김: 저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너무나도 힘들게 살았던 이유가 차라리 시장이라도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 팔아 끼니라도 해결 할 수 농촌은 이것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어서 1년 배급을 주게 되면 그 분배 양을 가지고 우리가 잘 먹으면 좋겠지만 그 양이 아닌 거에요 수분이 그대로 있어 수분이 빠지면 양이 줄어들고 항상 식량이 모자란데 우리가 시장을 이용할 수 없는 거에요

그러다 한국에 오니 시장 가기가 너무 편안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 정말 좋았다고 탈 북 초창기 당시를 돌아봅니다.

김: 우리처럼 차가 있으면 시장까지 차를 끌고 가면 좋겠는데 북한은 100여리 길을 등에다 짐을 지고 걸어서 갔다 오고 나면 당일 치기를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죠 그런 북한에서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홍수나 태풍피해가 오게 되면,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한끼 벌이는 할 수 있지만 농촌 사람들은 그것도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는 끼니를 거르는 일도 흔했다고 하는군요

김: 그래서 미 공급 시기에도 시내 사람들도 죽어 나갔지만 농촌에서 더 많이 죽어 나간 것이 농촌에서는 풀 뜯어 먹고 당연히 농사를 짓는데 왜 굶어 죽느냐고 얘기하는데 농장에서는 1년치를 분배해 주는데 수분을 축적하고 껍데기를 타작하고 이런 것을 다 제대로 해야 되는데 농장에서는 제대로 계산을 안 해 주는 겁니다. 하나라도 그 수치를 조절 해야만 농장에서는 이득이 되니까 그 뗀 것을 농민들에게 다 배분을 하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그 농민들은 재 분배도 제대로 못 받고 그리고 약간만 아파도 분배 량이 잘리고…

북한에서 배급을 타던 시기에서 8월말-9월로 들어선 지금 같은 시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하는군요

김: 지금 보릿고개를 지나서 감자가 나오고 강냉이가 나오는데 풋강내이, 그런데 북한에서 함경도 쪽은 지금 영근 강냉이가 안 나옵니다. 풋 강냉이가 나오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이런 강냉이로 끼니를 때우고 했는데 앞으로 분배 까지 가려면 11월12월이란 말이죠 그때 까지 살려면 10월까지는 지난해 비축했던 식량으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거둔 식량은 해마다, 항상 부족 했기 때문에 배고픈 시절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김: 다행스러운 것은 태풍이 큰 어려움도 주었지만 심심산골 에는 송이 버섯이 도움을 주었을 지도 송이 버섯이 나는 좋은 기후거든요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씨가 제가 살던 곳에는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 전에도 한국에 있는 고향 친구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요즘 송이철 이니까 송이 뜯어먹고 살겠네… 우리는 고향을 이렇게 추측하면서 살고 있어요

북한이 홍수, 태풍피해로 올해는 더욱 더 어려워 북한 가족들이 생활비를 요청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군요

김: 지금 북한에 태풍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북한입장에서는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라고 봅니다. 햇곡식이 나오기 바로 직전이기 때문에 더 생활이 어렵고 그리고 햇곡식이 나와서 강냉이나 쌀 가격이 많이 내리면 돈 있는 사람들은 빨리 쌀을 사서 비축을 해야 됩니다.

지금이야 말로 겨울 식량을 비축하는 시기라고 강조합니다.

김: 앞으로 좀 있으면 농작물을 거두어 들여서 1년동안 생활 할 것을 확보를 해 놓아야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생활적인 형편으로 돈을 요구할 시기가 아닌가 북한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보면 지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기에 북한의 가족들을 위해 돈을 보내려면 브로커, 중개인들의 활동이 꼭 필요하겠죠. 올해는 특히 브로커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지금 브로커 보편적으로30%를 준다고 하는데, 중계 수수료를 30% 뗀다고 하는데 그런데 브로커를 좋지 않은 사람을 잘못 만나면 50% 또는 완전히 잘못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냥 모두 떼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

현금거래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과 지속적으로 거래 할 수는 없는 환경이라고 하네요.

김: 대부분이 한국측에서 브로커를 선택 하는 거죠. 우리가 선택 했을 때 이 사람이 중간 역할을 잘 해주면 다음에도 다시 부탁을 할 수 있는데 만약에 한 번 실수 하면 탈북자들 세계가 넓은 것 같아도 넓지 않아요. 또 브로커 하는 사람들이 거의 고정적이고 많지 않아서, 착실하게 해주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렵고 …

브로커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염려합니다.

김: 보위 부에 우리가 노출되는 것 그리고 브로커라는 사람이 보위 부와 짜고 하는 경우 이런 것도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사실 북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때도 노심초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안심하고 편안하게 거래 할 수 있는 브로커, 단골이라고 하죠,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지…

김; 내 가족이 휴대 전화가 있어 직접 통화를 해서 어디다가 돈을 보내니 직접 받아서 그 자리에서 직접 통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러면 정말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돈을 믿고 보내는 거죠

이런 방법을 쓰는 탈북민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

김: 북한에 휴대폰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야 되거든요. 요즘에 북한에도 우리가 쓰는 터치 폰, 스마트 폰 이 들어가요 중국의 칩을 사서 쓰기 때문에 그것을 보내면 그전화기를 통해서 중국의 위챗을 이용해서 문자, 사진, 동영상도 오고 가고 심지어 영상통화도 하더라고요 요즘에는 돈을 주고 데이터를 사서 유트브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이런 것은 최대한 숨어서 해야 되고…..

김 대표는 지금도 북한에 있는 가족의 소식을 몰라 안타깝지만 한국의 가족이 큰 위로가 된다고 하는군요

김: 지금 가족이 살아나 있을까…. 이제는 여기에 가족이 있고 하니까…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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