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상상도 못할 꿈들, 정착 12년에 한국에서 이뤄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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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을 하는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씨
시 낭송을 하는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씨
Photo: RFA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이제는 간부급들이 탈북에 관한 정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 간부급들도 어떻게 탈북할 수 있는지 자기네가 온다면 한국 당국에서 문제 없이 받아 줄 수 있는지...

북한 보안서에서 일했던 김시연 씨와 함께 합니다.

음악:

북한의 일부 간부들이 탈북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북한이야 늘 간부를 비롯해 주민들까지 통제를 하지만 시기에 따라 통제를 심하게 강화 할 때가 있다는군요

: 간부들도 역시 그 위로부터 통제를 받고 감시를 받으니까 김정은이 너무 조여서 못 살겠다고 탈북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더라고 해요

간부들이 탈북까지 생각한다는 일은 지금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설명합니다.

: 김정은이 그동안 미국 대통령도 몇 번씩 만나고 중국  한국 대통령을 동남아 베트남 싱가폴을 다니면서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김정은이 느끼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자기를 다 이성적으로 대하는 구나 생각할 꺼에요

이 시점에거 김정은이  간부들을 향한 통제를 더 강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따른다고 하는데요,

: 힘 없는 주민들보다 오히려  힘을 갖은 간부들을 김정은이 더 두려워 하거든요 간부들을 통제 하고 서로 감시가 더 강화 되는 것 같아요 중국을 드나드는 간부들인데 못 살겠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래요

근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를 할 때 김정은의 표정이 다른때와 달리 단호해 보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여러차례 국제 무대에 나서면서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다고 지적합니다.

: 물론 북한에서도 여러 가지 벼랑끝 전술로도 밀어 부쳤지만 그래도 뒤에서는 쫄았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선에서는 자신감이 생겨 그래서 미사일 포를 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김시연 씨는 북한을 떠난지 10년이 조금 넘어 이제는 완전히 정착해 한국 주민이 다 되었다고 전합니다.

: 저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살다 보니까 정착을 빨리 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다른 탈북자들도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 사람들은 12년이면 거의 기반을 다 갖추거든요 제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보면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아파트도 새로 장만해 살아요 대체로 북한 사람들의 생활력이 강해서 10년이 넘으면 잘 정착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도 사업이 시원치는 않지만 정착을 했다고 봐요

특히 김시연 씨는 세계의 여러나라 여행을 통해 북한이 어떤 국가인지 파악할 수 있었고 또 부지런히 탈북민 모임에도 참여한 것이 정착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 저는 그동안 해외여행 13국가를 갔으니까 많이 다녔죠, 북한 망명펜클럽에 소속이 되어 글을 많이 썼고 요즘에는 월간 조선에 장편소설을 써서 1회가 실렸어요

지금 쓰고 있는 4편의 연작소설은 독립운동을 했던 송몽규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의 김시연, 원래 이름은 송경옥인데요, 자신의 대까지 겪었던 일을 쓰고 있다고 전합니다.

: 1회는 큰 할아버지 송몽규씨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송몽규 할아버지가 남긴 시들과 산문등으로로 독립의지와 각오등을 기록한 글도 많이 저희집 큰 보자기에 많이 쌓여 있었어요

송몽규할아버지는 윤동주 시인의 사촌으로 김시연 씨가 탈북할 때 윤동주 시인의 친척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탈북 할 수 있었다는 사연을 여성시대 에서 전해 드린바 있습니다,

: 유품들이 보자기에 싸서 농 밑에 감추어 놓고 있었는데 북한이 계속 가택수색을 60-70년대는 더 심했어요 80년대 중반까지도 가택 수색을 했어요 할아버지가 3남이었는데 아들을 둘 씩이나 일본놈들 한테 학살당했으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 외아들이 된거에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70 몇 년도엔가 다 불로 태웠어요

하나남겨진 아들 김시연 씨의 아버지를 지키기위해 증거품을 태운겁니다. 이런 내용에 이어 2회에서는 송몽규할아버지의 아들, 김시연 씨의 아버지 얘기가 계속된다는군요

: 아버지가 머리가 좋아 군에서 알아주었는데 무력부에서 신원조예가 계속 두번이나 내려 왔는데 6촌형이 해방되자 마자 함경도에서 사과 재배를 완성한 엄청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함경북도는 맨 꼭대기 나진 선봉있는데 그 6촌형이 그곳에서 사과 재배를 성공시켜서 해방이 된 다음에 그 과수원을 국가에 다 헌납하고 도 대의원으로 일하셨어요

그런데 신원조예를 받아야 되는 발단은 사과 재배에 성공했던 그 6촌 형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 6.25 전쟁이 끝난후 전쟁때 남조선 사람들과 간첩행위를 했다고 누가 이런 밀고를 한거에요 6촌형이 갑자기 보위부에 체포되어서 정치범수용소로 갔는데 이런일로 저희 아버지가 인민무력부에서 두번 탈락하고 세번째는 김일성의 최 측근이었던 최룡해 아버지 최현장군이 저희 아버지 부대에 시찰을 왔어요 그런데 저의 아버지가 군 부대가 생긴 연혁하고 전술, 군사기술 등을 해설했는데 최현장군이 너무 잘봐 데리고 올라가 쓰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신원 조예에서 그 6촌 형 때문에 아버지가 안되었어요

시현씨 어머니는 아버지가 평양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늘 안타까워 하시면서 들려주셨던 얘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 너희들은 6촌 큰 아버지가 아니면 벌써 평양에 올라가 살았을텐데 6촌형 때문에 아버지가 출세를 못해서 너희들이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계속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이런 내용등을 정리해서 2회를 쓰고 3회는 저희 시아버지가 특각 소장으로 있으면서 해임철직 되는 여러가지 어려운일을 당하면서 마지막에는 거지처럼 떠돌다 세상을 떠나시는 내용이고 4회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일들을 쓰고 있어요

주간조선에서 이미 시작해 1회가 나갔고 4회까지 연재가 될것이라고 하는군요  북한망명작가 펜 클럽 회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글은 계속 쓸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탈북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 북한에서는 어릴때부터 문학에 대해 엄청 소질이 있었어요 그래서 국어문학 시간이면 동요 동시도 잘 쓴다고 상도 받고 문학 소저도 다니고 했는데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까 김정일 김정인 찬양하는 글을 쓰기 때문에 감정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하고 아예 포기를 했어요

특히 아버지가 군대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외국 소설들을 보면서 전문적인 문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작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는군요

: 아버지가 계속 외국 소설들을, 부활이나 몬테 크리스토 백작, 빨간머리 앤, 안나카레리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나 등의 책들을 가져 오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보신 다음에는 제가 보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문학에 소질은 있는것 같아요.

당시 아버지가 보시고 그리고 김시연 씨가 본 책들은 금서, 북한에서 읽으면 안되는 책들이 아니였는지 ….

: 톨스토이등 러시가 작가들의 책은 북한에서 금지 하지 않았어요 그런 책들이 공산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이 아버지 군대 도서관에서 빌려 왔고 그후 몬테 크리스토 백작, 빨란머니앤, 부활 등은 같은 책은 80년대 보았는데 아버지가 80년대 그때 빌려왔어요 그런데 그 시절 한때는 세계 명작들을 북한에서 볼 수 있도록 용인을 했어요 그래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영화도 많이 나오고 사상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책 들은 많이 나왔어요

김시연 씨는 다른 일반인들과는 다른 집안의 배경으로 이런 책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어 지금의 김정은 정권 보다는 김정일 정권이 훨씬 나았다고 전합니다.

: 80년대 일반인들도 세계아동 명작은 보았어요 그리고 샤일록 홈즈의 탐정 소설은 일반인들도 보게했어요

김시연 씨의 한국에서 정착한 삶의 한 부분에는 같이 탈북한 딸도 한국에서 잘 적응하면서 즐겁게,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 저희 딸을 도와 주고 격려해 분들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도움을 받았어요 또 지난번에 글로벌 기업에가서 인턴으로 일 했는데 그곳에서도 지금 취업을 하려면 오라고 해요 그리고 무슨일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 인정을 받는것 같아요

졸업을 앞두고 한국의 유명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네이버에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군요

: 호주에 1년 가까이 유학도 갔다왔고 이제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취업준비를 해서 취직을 하겠다고 해요

한국에 와서 탈북민으로 지인의 소개로 한국인을 만나 새로운 가정은 꾸린것도 큰 축복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잘 이끌어 가는데 큰 도움을 준 딸이 고맙고 대견하다고 하네요.

: 다섯살에 아빠를 잃었어요 그래서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던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새 아빠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지금도 아빠하고 사이가 너무 좋은거에요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고 여유가 있었던 점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 가는데 도움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처음에는 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으니까 좀 어려웠어요 하던 사업이 안 되어서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어요 부동산 사업은 잘 풀려서 그때부터 큰 문제없이 살았어요.

이제와서 돌아보니 한국에서 시작한 새로운 생활을 어떻게 평가 할 수 있는냐는 질문에어떤 망설임도 없는데요,

: 행복했죠, 그리고 제가 상상도 못하던,언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 생각을 했겠어요 북한에서 정말 죽지못해 마지막에  죽으면 죽자 이런마음으로 두만강을 건넜거든요 그런데 외국을 많이 다니고 올 여름에도 곧 그리스와 터기를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나도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구나 정말 감사한 일이다 라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까지 가족들과도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보고 싶을때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세월이 가고있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 엄마 아버지 생각이 너무 나는거에요  죽을때 까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인것 같아요

잠깐 이산 가족상봉 소식이 있을때 혹시나하고 희망을가졌지만 그 희망이 다시 사그러들어 이런 아픔이 언제 사라질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 우리가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도 북한 한쪽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안타까운 일인거죠 그러니까 통일에 대한 기대를 점점 하지않게 되고 만약 김정일이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마음밖에 없는거죠.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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