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 총국 출신의 탈북민, 내가 왜 이제야 왔을까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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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지대에 탈북자를 막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
북중 국경지대에 탈북자를 막기 위해 설치된 철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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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호위총국은 한국의 청와대 경호처에 해당한다는데요, 지난 1970년대 중반 호위국이라는 명칭으로 창설됐습니다.  이후 호위총국으로 격상되었고, 1980년대 중반에 호위사령부로 한차례 더 격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김정일 시대, 호위 총국의 일원이었던 가명의 김성국씨,

: 그 당시 이 체제가 우리가 생각했던 체제는 아니구나 수령도 또 내가 알아왔던 들어왔던 것과는 다르다고 느꼈죠,

여성시대, 한 가정의 남편, 그리고 가장으로 호위총국에서 생활을 하다 탈북 한 가명의 김성국씨의 얘기 들어봅니다.

일반 주민들과는 달리 지도자와  가까이 있으면서 어떻게 느꼈는지, 또 평소에도 원했던 지도자 다웠는지 아니면 실망했는지 궁금한데요,

: 그때 초창기 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죠 당연히 수령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뭐든지 자기가 생각하고 하고싶은 것은 다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은 그렇게 되어 있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초기에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당연한 것이었죠

김성국 씨는 한국에 와서야 북한 지도자들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었다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전합니다.

: 한국에 와서는 북한의 지도자 상에 대해 많은 것이 바뀌어 그런 것은 얘기하자면 아마 수위를 조절 해야 될 것 같은데요,

특히 북한 최고 지도자의 여성 편력은 지금은 많이 알려졌습니다만 특수한 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궁금증을  물었습니다.

: 내가 직접 본 부분까지만 말씀 드린다면 실제로 근접해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많거든요 중앙당 조직지도부 6과가 여성들을 많이 스카웃해 갑니다 그 중에는 홀로사는 과부 여성들을 모집해 가는 경우도 있고 20대 10대 고등 중학교를 졸업한 이런 여성들도 스카웃, 뽑아가는데 그 여성들이 결국은 한 10년 동안 부모와 떨어져 집에도 가지 못하고 부모와 편지 거래도 못하고 부모를 만날 수도 없죠 우리 군인과 똑같이 그렇게 수령일가를 위해 하는거죠, 예를 들면 이발만 하는 여성도 있고 빨래기에 세탁만 돌리는 여성도 있고 잔디 관리 꽃 관리하는 여성도 있고 아주 다양한 일들을 하죠 한,두 사람을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을 자유라든가 이런 것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수령일가를 위해 바쳐야 되는 상황이 안타깝고 그리고 비슷한 맥락인데 한 사람, 그 일가만 운용하고 그 사람들만 좋아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즐기는 건물이나 그런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 수 많은 군인들이 몇백 혹은 몇천 여명의 군인들이 그곳에서 주둔해 청춘을 보내고 있는 것들은 인민의 수령이다. 또는 인민의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지 않나…

이외도 말하자면 끝이없을 것 같다는 김성국씨는 이런 일들이 주요 탈북 동기는 아니였다고 말합니다.

: 결정적인 동기는 아니고 그 당시 이 체제가 우리가 생각했던 체제가 아니구나 수령도 또 내가 알아왔던 들어왔던 것과는 다르다고 느꼈죠, 한마디로 이 체재에 대한 불신을 느꼈던 겁니다. 그후에 전역을 했죠 그런데 북한은 갈때도 그렇고 올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위에서 오늘 군복을 벗어라 하면 벗어야 되는 거죠

이렇게 군복을 벗은 다음 고향에 와 보니 그동안 보고 느꼈던 것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 전역해서 고향에 와 보니까 다 아시는 것처럼 북한은 평양과 지방 또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어마어마 하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이나 다른 외국에 나가보면 차이가 없는것이 제일 부러운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차이가 너무 심하다 보니까 지방은 말 그대로 살만한 곳이 못 되죠. 평양을 그래도 살만한 곳인데

북한의 한 곳 한 분야에서 일을 했다면 그렇게 까지 낙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사회에 나와 여기 저기를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것들이 눈이 띄이면서 알게되었고 아는 만큼 절망도 컸다고 설명합니다.

: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되겠고  또 김정은 체제를 떠 바치는 중간급 계층이 되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인민을 위해서 실제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직권을 가지고 자기 주머니만 불리는, 착복하는 것들도 많이 목격했고, 그러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것이 더 더욱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죠

그중에서 가장 실망을 했고 북한에 대한 환멸이 가장 컸던 일이 벌어집니다.

: 가장 큰 계기가 장성택 처형 이었죠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을 겪었죠 이 상황을 보면서 이건 정말로 충격이었죠 저뿐만 아니라 2500만 북한 주민들이 다 충격을 받았죠 장성택이야 말로 그 당시 북한의 2인자라고 할 수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죠 그런데 이 장성택이 처형되는 것을 보고 야 참 ….이것은 인간이 윤리적으로 보더라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많이했었죠

이런 실망감으로 차 있던 때 한국에 대한 것을 먼저 탈북한 친구로 부터 알게 됩니다.

: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또 먼저간 친구들과 연계가 되어서 한국에 가면 어떠냐 그랬더니 그 친구가  연계가 좀 어렵게 되었는데 너무 좋다, 너도 거기서 허송세월 하지 말고 오라 네가 오겠다고 하면 선을 연결해 주겠다 이런 제의를 받고 제가 한 6개월을 고민했죠 과연 가는 것이 맞느냐 간다고 하면 북한에서 포기 할 것과 여러가지 여러가지 위험 요소가 너무 많은데 6개월 고민하다 가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 지금 돌이켜 보았을때 정말 현명한 결심을 한것 같고요 한가지 가장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겠지만 내가왜 이제 왔을까 한 10년 전에만 왔으면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고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을 좀 더 일찌기 맛 볼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굉장히 많죠

하지만 이런 것들 보다 가장 뼈 아프게 느끼는 아픔, 가정을 두고 온 아픔은 쉽게 아물지가 않아 지금도 힘들다고 전합니다.

: 흔히 다 한국이나 제3국으로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일 힘든 부분이 외로움이죠 다시는 그리운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에서 정착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 과정이 어려운데 특히 부모님, 형제라든가 가족은 말 그대로 피가 흐르니까 북한에서도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렇게 볼때 어려운 부분이고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김성국 씨는 북한에서도 가끔 접할 수 있었던 방송의 힘, 북한 당국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 방송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북한이 방송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요, 노동당이 나팔 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언론인들을 가리켜서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나 민주사회에서는 그렇게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방송의 역할 만은 어느사회나 같다고 봅니다. 방송이 외부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생활에 대한 걱정없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는지 이런 것을 북한에 알려주는 역할은 북한주민들의 의식을 깨우치게 한다던가 변화시킨다든가 방송만한 수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성국 씨는 하고 싶었던 꿈을 조금씩 단계를 높이며 실천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 저는 한국에 와서 개인적으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해외 여행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이 해외 여행을 꿈 꾼다는 것은 우리 다른사회 다른 나라들에서 일반인이 우주여행을 꿈 꾸는 것 같은 이런 차원이죠 호위 총국에서 장교로 있었으면 해외로 못 나갑니다 국가 대표단에 포함에 되어서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돈 벌이를 위해서든 사사여행을 위해서나 절대로 해외 못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와서는 무조건 일년에 해외여행 한 두번 하는 것을 차곡 차곡 실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고온 가족, 친구들이 살고 있는 북한을 위해서 목표도 세우고 있다는데요,

: 해외 여행을 하면서 북한에서 내가 몰랐던것, 잘못 알았던 것들이 바로바로 시정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은 것 이지만 제 스스로 예를 들어서 북한은 미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유럽에도 가보고 미국에 가보면 얼마나 풍요롭게 잘 살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이 스스로 학습이 되는 거죠

이런 개인적인 희망과 함께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꿈과 목표가 확실하다고 강조합니다.

: 그래도 내가 한국에 와서 뭔가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먼저 온 사람으로서 북한의 2,500만명 주민들을 외면 하면 안되는 거죠, 그래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언가는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저는 우선 내가 모든 것을 재 정립 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업의 뜻을 이루면  그 다음에는 좀더 높은 목표를 세울까 이렇게 생각 합니다.

김성국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통일입니다. 정치통일

: 정치 통일을 전공하는데 이제 수업은 다 끝나고 마지막 논문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 통일, 언제인가는 이루어 지겠죠?

네 고맙습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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