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WEST) 프로그램 유학생 유고은 씨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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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의 유학생인 유고은 씨.
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의 유학생인 유고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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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에 와서 영어도 배우고 직장에서 업무 실습을 하는 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의 유학생으로 올 2월부터 7월까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수습기자로 활약한 홍익대학교 졸업반의 유고은씨. 꽃제비에 관한 심층취재로 북한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동료 탈북대학생과의 우정으로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5개월의 경험으로 느낀 그 무엇보다도 큰 보람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라고 유고은씨는 말합니다.

전수일: 수습기자로 일하며 여러가지 보도도 하고 현장 취재를 하셨는데요, 그 중에 특별기획 보도를 한 것이 있죠? 자본주의 사회의 노숙자와 북한의 꽃제비에 관한 것인데 두 편에 걸쳐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주제의 보도를 제작하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유고은: 인터넷에서 조선중앙방송이 만든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노숙자를 다룬 영상이었습니다. 미국, 유럽 등 자본주의 사회에는 거리에서 굶고 생활하는 노숙자가 많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 보도만 보면 북한에 꽃제비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서방세계의 노숙자 상황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쳤습니다. 또 노숙자 문제는 저도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 많이 봤거든요. 한국보다는 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궁금증도 풀고 북한 청취자들도 균형있는 여러 가지 면을 알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도로 제작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섰습니다.

전: 유고은씨 보도에서는 어떤 식으로 북한과 미국의 노숙자를 비교하셨는지, 그리고 노숙자 실상은 어땠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이들을 북한과 미국에서는 각각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지 저희 청취자들에게 소개해 주시죠.

: 미국이나 유럽 등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노숙자와 북한에서 말하는 꽃제비와는 개념도 다르고 그들의 생활 자체도 다릅니다. 북한 꽃제비는 그야말로 너무 먹을 게 없고 부모를 잃어 거리에 나왔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노숙자들은 정신질환 아니면 질병 혹은 삶의 의욕이 떨어진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고 있습니다. 또 이들을 도와주는 실태도 북한과 미국이 다릅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국가가 이런 이들을 챙겨주는데 북한의 꽃제비는 국가나 조직 차원에서 이들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전: 거기서는 3백만명이 굶어 죽지 않았습니까. 정상적인 일반 시민들도 먹고 살기 어려우니 구걸하거나 집이 없는 꽃제비들을 먹여 살리기가 제도적으로 어렵겠죠.

: 그렇습니다. 제가 보도 제작과 관련해 한국에 있는 꽃제비 출신의 탈북자를 인터뷰 했습니다. 그 분 얘기가 북한 당국 자체가 워낙 식량이 부족하다 보니 꽃제비 구호소에 먹을 게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저도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배급제가 있는데 그 배급제를 활용해 굶어죽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전: 미국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구걸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민간단체가 지원하는 것이 정부 지원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노숙자들을 돕고 싶어 자기 비용으로 돕는 것이죠. 노숙자를 돕는 미국 민간 단체들과 인터뷰를 해 보았는데 이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같은 동네의 노숙자들을 보면 동정심을 갖고 그 지역의 노숙자 돕기 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 단체는 이웃들의 기부금을 모아 노숙자들을 돕는 것이고요.

전: 북한의 꽃제비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방안이 있겠습니까?

: 무엇보다도 북한 당국이 식량 생산을 늘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꽃제비는 식량 부족만으로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꽃제비가 되는 주민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통제는 가정 집이라는 단위에서부터 이뤄지기 때문에 주민이 자신의 집을 떠나면 당국은 자신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된다는 것이죠.

전: 일단 통제에서는 벗어나는 셈이라는 거군요.

: 그렇죠. 그런 통제를 벗어난 삶을 살다 보니 다시 북한 당국의 통제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량난이 해결된다고 해도 꽃제비 생활로 그런 자유를 맛 본 사람들은 다시 일상적인 통제를 받는 생활을 못한다고 합니다.

전: 즉, 속박된 생활을 다시 하기 싫다는 얘기군요?

: 그렇습니다.

전: 그 문제를 깊게 파고 들면서 유 인턴기자도 여러가지 면에서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됐을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자유아시아방송의 수습기자는 두 사람입니다. 유고은씨와 탈북자 대학생 인턴이죠. 저희 청취자를 위해 그 학생에 대해 소개해 주시고 또 같이 멀리 여행을 다녀 온 얘기도 들려 주시죠.

: 제가 먼저 여기에 수습기자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탈북 대학생이 나중에 들어왔죠. 근데 저는 다른 수습기자가 들어 온다고 해서 아주 기뻤습니다. 워싱턴에서 일하면서 북한에서 온 친구를 정말 사귀고 싶었습니다. 남한에서 제가 다니는 교회에 탈북자 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분이 너무 바빠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새 인턴을 추가로 뽑는다기에 적극 찬성했습니다. 함께 일하며 알고 보니 성격도 아주 당차고 시원시원했습니다. 근데 나이가 저보다 많아 언니입니다. 그런 시원시원한 성격이어서 여러가지 질문을 서슴없이 물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언니 북한에도 이런 거 있었요? 혹은 ‘언니, 북한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요?’ 등 등의 질문을 편하게 물어보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항상 물어 봤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 남성과 북한 남성 간의 차이가 뭔가? 또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옥수수 쌀을 펑튀기 하는 장수가 있었는데 북한에도 그런 장수가 있나? 등을 물어 봤습니다. 질문하면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줍니다.

전: 일을 하면서 어떤 보도나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도 많나요?

: 네. 제가 쓴 기사가 북한 청취자가 들을 때 어떨지에 대해서 물어 보곤했습니다. 예를 들면 기사 중에 어떤 단어가 북한에서도 사용이 되는지, 청취자가 이해하도록 제 단어를 쉽게 풀어쓰면 어떤 건지 등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근데 가끔은 이 언니도 남한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북한식 표현을 까먹은 때도 있었습니다.

전: 아무래도 우리 기자들에게는 언어문제가 가장 고민스럽기도 하죠. 근데 남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은 비록 영어가 아니라도 북쪽과는 달라서 기자들이 어떤 특정 단어를 쓸 때 그것이 북쪽에서도 잘 이해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하튼 유고은씨도 그런 고민을 하는 자체가 북한문제를 접근하는 데 큰 진전을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통상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글을 같이 쓰니까 우리가 쓰는 말을 당연히 북쪽 청취자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 북한출신 청취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못 알아듣는 말이 많다고 합니다.

: 네. 맞아요. 같이 일한 탈북대학생 언니도 미국에 와서 일을 배우면서 ‘나는 영어도 못하고 한국말도 못한다’라고 해서 웃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이해합니다. 탈북학생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어를 배워야 하거든요.

전: 마치 새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요?

: 네. 남북 간 단어가 너무 다르니까요.

전: 폭포에 갔다 온 여행 얘기 좀 해 주시죠.

: 네. 얼마 전 같이 근무하는 언니와 또 다른 탈북대학생 셋이서 미국에서 가장 큰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었습니다. 세계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생각한 곳이었습니다.

전: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워싱턴에서 얼마나 걸립니까?

: 버스로 밤새 달려 11시간 정도 걸립니다. 나이아가라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쪽에서도 볼 수 있고 캐나다쪽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캐나다쪽에서 보는 폭포가 더 아름답다고 해서 저희는 미국쪽 도시 버팔로에 도착한 다음에 다리를 넘어 캐나다쪽으로 가서 캐나다쪽에서 봤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하루 만에 두 나라를 여행한 셈이죠. 캐나다쪽으로 국경을 넘어갈 때 다리에서 언니들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책으로만 보고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이렇게 유명한 폭포를 우리가 와서 보게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냐’고요. 그리고 배를 타고 강을 가로 질러 폭포 바로 앞까지 가는 관광을 했는데요 우비를 입고 배를 탔습니다. 물안개가 너무 심해 마치 비를 맞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 우비가 젖고 카메라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눈도 간신히 떠가면서 선상에서 구경했는데 우리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 저도 아주 오래 전에 가족과 함께 가봤었는데 정말 웅장하더라구요. 그런 폭포 한국에서 보신 적 있습니까?

: 못봤던 것 같아요. 한국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이니까요.

전: 탈북대학생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북한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던가요?

: 아니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릴 때 탐정소설이나 세계여행 소설 읽으면서 ‘이런 곳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라고 했는데 바로 자기들이 그런 곳에 와 있어서 꿈을 이룬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저와 똑 같았습니다. 저도 어릴 때 ‘이런 곳, 이런 풍경이 있을까’ 하며 궁금했었거든요.

전: 그러니까 한반도의 남과 북 출신 학생들이 미국에 와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순간 우물안의 개구리가 그 우물에서 튀어나온 거네요?

: 저는 미국에 왔을 때부터 우물에서 튀어 나온 셈입니다. 근데 느끼는 건 다 똑 같은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전: 유고은씨는 홍익대학교에서 언론 전공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 광고홍보학과 경영학과입니다. 광고가 북한에도 있나요?

전: 요샌 평양시내에 광고판도 올리고 한다는데 방송에서는 광고하는 것 못봤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업광고가 대단히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 광고학 전문을 해서는 북한에 가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겠네요.

: 아니죠. 저는 이 회사에서 일을 한 건 언론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과 북한사람 인권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하면서 이런 인권관련 북한관련 문제에 새로운 접근 새로운 정보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북한인권운동에 직접 관여하는 것만이 북한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졸업 후 마켓팅 분야나 홍보 분야에서 일을 할 계획입니다만 제 분야에서도 그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 경험 등을 통해 북한인권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전문 분야에서 북한과의 교류나 지원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에 와서 영어도 배우고 직장에서 업무실습을 하는 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의 유학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에서 5개월 간 수습기자로 활약한 홍익대학교의 유고은씨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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