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탈북정소년 대안교육의 선구자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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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의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
서울 남산의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
RFA PHOTO/전수일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 들어간 탈북 청소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학교생활 적응입니다. 낯선 학교 문화도 그렇지만 국어 영어 수학 등 모든 학과를 따라 가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느라 배우지 못했고 중국에서는 공안에 쫓기느라 학교에 가지 못 했던 아이들. 16년전 중국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 같이 생활하고 또 이들을 구출했던 탈북난민 지원 운동가 조명숙씨. 지금은 탈북 청소년들의 학업과 남한사회 적응을 돕는 대안학교 교육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잡은 여명학교를 찾아 조명숙 교감선생을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한국에 대안학교가 많다고 하는데 대안학교란 무엇입니까?

조명숙: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시키는 학교를 말합니다. 남한 학교에 북한출신 아이들이 적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한식 교육을 포함해 북한 어린이들에게 맞게 가르치는 곳인데, 현재 한국에는 8-10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명학교는 학력을 인정받는 최초의 학교가 됐습니다.

전: 여명학교의 학생 수와 2004년 개교 이래 얼마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까?

조: 2004년 시작때는 20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70명 정원에 60명정도가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95명이 졸업했습니다. 그 중에 52명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17명은 취업했고 나머지는 결혼했거나 외국에 유학갔습니다.

전: 여명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조: 과목은 남한 일반학교의 것과 같습니다. 다만 내용은 저희 학생들에게 맞게 가르칩니다. 우리 학생들이 남한 학생과 달리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준법정신이란 개념은 다 같아야 하지만 저희 학생들의 경우는 법을 지키고는 여기 한국에 올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법은 지키는 게 아니라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하되 그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국의 문화, 교육 환경이 생소합니다. 그래서 국어와 영어라고 해도 그 환경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지 않고 내용만 가르치기가 어렵습니다.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입니다. 남한의 교육과정을 따라 가기 전에 미리 선행학습하는 과정을 제공합니다.

전: 실제 가르치는 학과목은 어떤 것입니까?

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한문 역사 등을 가르칩니다. 한문 만 해도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남한에 온 학생들이니까 남한식 생활과 인성교육 위주로 합니다. 역사의 예를 들면 북한에서는 이성계는 나쁜사람이라고만 배웠는데 다른 시각이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래서 남한식과 북한식 교육 내용을 비교하겠금하는 그런 교육과정이 저희 학교에 있습니다.

전: 그럼 북한에서는 조선의 시조를 안 좋은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모양이죠?

조: 네. 북에서는 고구려-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북한이라고 교육하기 때문에 중간에 나온 이조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남한사회의 첫 걸음’이란 과목도 가르칩니다. 남북사회가 다른 것이 무엇인지 또 여기서 더 배워야 할 것과 여기서 해서는 안 되는 것도 가르칩니다. 이런 걸 어느 일반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여기서 영어 국어 수학처럼 접해보지 못한 과목도 있겠고 또 수학 기초는 배웠다고 해도 여기서 가르치는 과목을 배울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을 지 궁금합니다.

조: 학생마다 과거 경험에 따라 선행학습 여부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래서 영어 수학 국어의 경우는 학업 수준에 따라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중간정도 수준 등으로 나눠 반을 운영합니다. 하지만 다른 과목들은 이해를 시키면 되는 과목들이라서 분반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학과 운영이 남한의 일반 학교와는 다릅니다.

전: 그럼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그런 교육법을 알아야 하겠네요.

조: 알아야죠. 그래서 저희 선생님들도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교수방법뿐 아니라 북한의 상황, 특성, 교육과정을 알아야만 대안교육의 방안이 나오는 겁니다.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고.

전: 여기에서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에 학생들은 무엇을 합니까?

조: 저희가 중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등학교 학력 인가를 받아 검정고시를 안 봐도 됩니다.

전: 검정고시를 소개해 주시죠.

조: 검정고시는 일반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다닐 수 없는 청소년들이 이 고시를 통해 학력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근데 저희는 고등학교 학력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저희 학교를 나오면 바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학교 과정은 아직 인가를 받지 못해서 중학과정을 마치는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과정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전: 검정고시나 학과목 배우는 것 말고도 여기에는 문화체험이나 현장학습 같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 초기에는 그런 것을 많이 했습니다만 지금은 치유과정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 치유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조: 너무 어린 나이에 최악의 생존 경험과 북한에서 받은 억압으로 심리적인 상처가 굉장히 심합니다. 우리들이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도 아픈 것을 모르다가 결승선에 이르면 아픈 걸 느끼지 않습니까? 그처럼 북한과 중국에서는 아픈 줄 모르다가 여기에 오면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심리치료도 하고 건강 회복도 시키고. 저희 학생 중 30퍼센트는 약물치료도 한 경우가 있습니다. 60퍼센트는 빈혈과 당뇨 증세가 있습니다. 그게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전: 그런 건 성인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조: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한 끼만 먹는 신체조건에 익숙해져 있는데 여기는 세 끼를 다 먹으니 몸에 쌓이는 것입니다.

전: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다는 것이죠?

조: 사실 많이 먹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섭취하는 것인데도 북한에선 한 끼만 먹었기 때문입니다. 참 민망한 상황이죠.

전: 아이들 치유해주면서 상담도 해줍니까?

조: 네.

전: 주로 어떤 고민들이 많습니까?

조: 자기의 과거 경험. 인신매매를 당했거나, 폭력을 당했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것들입니다. 그때는 살기위해 참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아픈 상처가 되는 거죠. 또 북한이나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입니다.

전: 제자들과 함께 탈북자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나 현장에 참여해서 애타게 호소하는 보도를 봤습니다. 탈북청소년들에게는 탈북자 강제북송이 너무 끔찍하고 충극적인 비극일 것 같은데요.

조: 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고 해서 참아보자고 했더니 ‘선생님은 겪어 보지 않아서 몰라요’하는데 그때의 눈빛과 표정은 너무 안타깝죠. 또 가족이나 친구가 북송됐을 때의 충격은 더 심각합니다. 김정일이 죽고 탈북자들에 대해 3족을 멸한다고 발표한 상황이었고 친구와 가족이 북송됐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였습니다. 북송사건을 특히 정치인들이 심하게 공개하니까 아이들은 더 힘들었습니다. 떠들어서 잘 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부모들이 위태롭게 되니까 더 걱정한 것입니다. 공개가 된 뒤에 아이들이 제게 와서 북송반대 시위 참여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나서지 말고 제 뒤에 서게 했습니다. 당시 배우 차인표씨가 당시 저희 학교를 많이 도와 줬습니다.

전: 차인표씨는?

조: 한국의 유명한 배우로서 탈북가정의 비극을 담은 영화 ‘크로싱’의 주연으로 출연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저희와 인연을 맺은 분인데 그 이후에도 계속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저희 학생들이 북송반대 캠페인을 하려한다는 말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운동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과격한 거부보다는 친구로서 호소하는 방식,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처럼 여러 사람을 아우르는 방식이 좋다고 하시면서 현명하게 대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작은 기적이 되어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북송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알려져 미국 영국 심지어는 먼저 통일된 독일 베를린에서도 운동이 확산됐었습니다.

전: 아까 탈북청소년들이 조 선생님께 ‘당해보지 않은 분이 어떻게 알겠냐’고 했다지만 조 선생께서는 실제 탈북자들과 인연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 탈북자들을 구출해 어느정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실 텐데요. 어떻게 그런 인연이 탈북청소년들의 교육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조: 제가 외국인 노동자를 돕고 외국인 난민들을 도울 때는 그들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제 앞에 서 있어도 제 문제 같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탈북자는 보자마자 남의 문제 같지 않았습니다.

전: 같은 민족이라서 그런 느낌이었습니까?

조: 그렇죠. 신혼여행으로 중국에 갔다가 그분들 돕고 같이 국경을 넘는 일을 하다가 함께 생활 하면서 느낀 것이 어른들은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그걸로 어른이 바뀌는 것을 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받아주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고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전: 탈북청소년과 탈북자문제에 대해서 단기적 지원보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탈북자 문제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나 접근방식인 것 같습니다.

조: 탈북자들 도와야 하지만 개인의 재정적인 면에서만 도우면 본인은 그 가치의 극대화나 효율적인 운영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탈북자분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이, 북한에서는 배고파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합니다. 교육을 통해서는 금세 그 성과물이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각자 알아서 스스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학령기의 아이들에게는 여명학교와 같은 학교체제로 돕고 성인탈북자들에게는 평생교육체제로 돕는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지원해도 개인적으로만 하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전: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흔히 얘기하는데 바탕을 먼저 만들어 주자는 거군요.

조: 네.

전: 이 일이 쉽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난관 장애 좌절도 있을 텐데요,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과 보람이 있어서 계속하신다고 봅니다. 희망과 보람의 뿌듯한 실례, 특히 제자들의 성공담이나 여명학교의 발전상을 얘기해 주시죠.

조: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다른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그 학교에서 포기한 아이들을 저희에게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아이들을 받을 때 더 기대가 됩니다.

전: 이른바 문제아이들?

조: 네. 변할 것이니까요. 그리고 변하게 할 수 있고요. 여태까지 변해 왔고. 그래서 남이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아이를 돕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포기한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쏟아 그 아이들이 확 바뀌면 그 아이들의 영향력은 그 어떤 모범생의 영향력보다 큽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염려도 합니다. 잘 하는 아이들을 집중 선별해 받는 게 좋지 않겠냐고요. 하지만 선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바꾸면 됩니다.

전: 제자 중에 여명학교에서 공부를 한 다음 대학교를 나와 직장에 간 학생들도 있죠?

조: 네. 당시 자리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 한 학생이 있습니다. 근데 지금은 대학교를 나와 국회의원 보좌관이 됐습니다. 사회사업가, 사회복지사, 엔지오(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보다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꿈을 꿀 때가 제일 기쁩니다. 졸업한 아이들이 취업을 하는 시기라서 더 좋은 일이 앞으로 더 많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제시대 때 오산학교가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면 통일시대에는 이 작은 여명학교가 그 역할을 해 내길 바라는 것이 제 소망이고 그걸 위해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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