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받는 정례 건강검진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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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한 종합건진센터에서 건강 검진을 하는 모습.
창원의 한 종합건진센터에서 건강 검진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을 옷을 몇 번 입었나 싶었는데 벌써 성큼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목요일에 서울 기온은 영하 2도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봄과 가을 옷은 몇 개면 되고, 여름과 겨울 옷으로 1년 내내 살게 되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제가 건강검진을 받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지난주에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더군요. 받아보니 제가 올해 건강검진 대상자인데, 아직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건강까지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국의 건강검진 체계에 대해 말씀드리면, 여기 사람들은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통해 자기 건강을 알아보는 것이죠.

그런데 검진 체계는 단순하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각자 소속된 직장에 따라 검진 체계가 좀 다른데, 대개는 직장에서 돈을 내주어서 검진을 받습니다. 직장이 없으면 자기 돈 얼마 내고 국가에서 또 돈을 내줘서 검진을 받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신문사는 40세 이하는 2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40세 이상은 매년 받습니다.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매년 받게 하는 회사도 있는데 그런 회사는 복지가 좋은 회사겠죠. 그럼에도 저도 나름 괜찮은 복지체계를 갖춘 회사에 다닙니다.

건강검진을 위해 제가 하는 일은 그냥 반나절 휴가를 내서 종합검진센터에 다녀오는 일입니다. 검진센터에 가면 한 15개 방 정도를 오가며 각종 검사를 받습니다. 피 검사, 안과 검사, 초음파 검사, 심전도 검사, 스트레스 검사 등 다양한데 저도 어디에 왜 들어갔다 나오는지 잘 모르고, 안내해주는 대로 들어가라는 방에 들어가 하라는 대로 하며 검사를 받습니다.

CT나 MRI라고 사람 몸 속을 들여다보는 장비 안에도 들어가 검사를 받기도 하는데, MRI 장비 같은 것은 대당 몇 십만 달러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딱 3대가 있다고 하는데 암 검진을 받는 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계입니다. 북한에선 누가 받겠습니까? 고위 간부들만 이런 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고위 간부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느라 이거 한번 쓰는데 1만 달러씩 뇌물을 써야 된다는 그런 장비입니다. 아니, 같은 장비가 아니라 제가 받는 장비가 아마 김정은이 받는 검사장비보다 더 최신일 겁니다.

대체로 마지막엔 수면 내시경이나 대장 검사를 받습니다. 마취제 맞고 자다가 깨나면 검사가 끝났다고 하는데, 그리고 병원에서 주는 죽을 먹고 떠납니다.

제가 매년 받는 검사 비용으로 300~400달러 정도 회사가 검진센터에 내는데, 이게 모든 검사 가격이 순전히 300~400달러인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이런 검사를 받으려면 최소 3000~4000달러는 내야 할 듯 합니다. 솔직히 제가 검진 받으며 사용한 장비 가격만 다 합쳐도 50만 달러는 넘을 겁니다. 한국이 싼 것은 웬만한 검진엔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고 심지어 13년 전에는 각국의 의료 체계를 현장에 가서 취재한 적도 있는데, 그때 한국의 의료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진을 받고 오면 1주일쯤 뒤에 검진 보고서를 우편이나 메일로 받습니다. 올해 검진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아, 제가 작년도 보고서를 보니, 무려 32페이지나 됩니다. 피 검사 하나만 갖고도 24개 항목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2페이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제 백혈구와 적혈구 상태는 어떤지 숫자로 적고 정상범위 내에 있으며, 2~3년 전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 이런 걸 쭉 표로 멋있게 만들어 보입니다. 철 결핍인지, 빈혈인지 이런 것도 다 조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간은 어떤지, 폐는 어떤 상태인지, 심장, 심혈관, 췌장, 갑상선, 관절, 골밀도 등 다양한 항목을 조사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워낙 저녁마다 기름진 안주로 술을 마시다보니 살짝 과체중이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좀 높다고 나왔습니다. 이외 자잘한 경고들이 있긴 합니다. 그나마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데, 간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래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매번 검진 때마다 간이 걱정되는데, 검사 받고는 안심하고 또 1년 내내 술을 마시고 이러니 저도 참 문제입니다.

작년에는 또 유전병 검사라는 것도 받았는데, 북에선 유전병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16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온 것을 보니, 112개 항목이나 검사가 된 겁니다. 위암 대장암 이런 각종 암에 걸릴 가능성, 심근경색, 백내장 이런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 심지어 정신분열, 우울증, 알코올 중독증 걸릴 가능성까지 다 조사가 됩니다. 저는 112개 항목 중에 두 가지가 가능성이 높다고 왔는데요, 치매 걸릴 가능성이 일반 평균보다 1.13배, 파킨슨병 걸릴 가능성이 1.058배 높답니다. 근데 좀 웃기죠. 1.13배나 1.058배는 그냥 평균인 1이나 거의 비슷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수명이 남쪽보다 10년 이상 짧은데, 북한도 이런 식의 정밀한 검진 체계가 일상화됐다면 사람들의 수명이 훨씬 더 높아질 겁니다. 북에선 아파야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그마저도 도시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지 농촌 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검진 장비라는 것이 워낙 열악해서 정확한 병을 발견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북한에선 건강검진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 매년 자기 건강 상태를 알 수 있고,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야 할지 그런 것까지 다 찾아주니 이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선진국이란 것이 이런 것이죠. 북한이 목표로 가야 할 미래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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