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느낀 북미회담의 미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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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질무렵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의 모습.
석양이 질무렵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의 모습.
AP Photo/Patrick Semansky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달 초에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탈북기자 8명과 함께 워싱턴과 뉴욕을 일주일 동안 방문했습니다. 제가 대표단 단장을 맡았는데, 오늘은 미국 분위기를 보고 온 이야기를 한번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단 탈북기자들은 도착하자마자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국에는 이렇게 북한에서 탈북해 온 기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북한의 행태가 궁금한 미국에서 북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탈북기자들은 그 자체로 귀한 존재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탈북기자들은 자유를 위해 최소한 한 번씩은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고, 민주주의 사회에 와서 그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언론이라는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사람들은 감동을 받더군요.

그래서인지 저희는 미국에 상주하는 기자들도 가지 못하는 그런 곳들에 초대를 받았고, 또 아무나 만나기 힘든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워싱턴에선 백악관에 이틀이나 들어가 봤고, 백악관에 정책 조언을 하는 조직, 북한으로 말하면 서기실 같은 곳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실에 들어갔고, 국무부와 의회, 펜타곤으로 불리는 국방부에 다 갔습니다.

흔히 북한 사람들은 지붕이 둥근 흰 건물을 백악관이라고 생각하는데, 백악관은 전 세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매우 작은 3층 벽돌집입니다. 건축한 지 몇 백 년이 된 낡은 건물이기도 하죠. 국무부는 평범한 건물처럼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안에는 미로처럼 설계했는데, 모르는 침입자가 들어오면 길을 잃으라고 일부러 그랬다고 합니다. 거기에 가서 TV에서나 보던 전 세계가 아는 미 국무부 여성 대변인과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또 국무부에서 스톡홀름 회담을 막 마치고 전날 돌아온 미국 대표단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미국 대표단도 북한이 스톡홀름 회담에서 하루 만에 판을 깨고 나간 이유가 궁금한 것 같았습니다. 그들과 나눈 자세한 이야기는 비공개를 전제로 만났기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국이 아직까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연 북한이 핵을 폐기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뭘 바라는지 이런 것이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북한의 책임이 크겠죠.

진짜 폐기할 마음이 있다면 이 핵을 폐기하는 대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솔직하게 미국에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가격을 맞춰서 폐기까지 가는 것이 협상의 기본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그런 정확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줄 듯 말 듯 하면서 빙빙 에돌아 말하니 미국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뭘 원하는지를 모르니 진짜 핵 폐기할 생각이 있는지 이것도 의심하게 되고 서로가 솔직한 협상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 외교관들이 미국식 협상 스타일에 맞추는 노력을 하길 권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니 다른 나라들에게 맞추기보단 다른 나라들이 자기들에게 맞추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 걸 아메리칸 스탠다드라고 하죠. 이런 태도는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싫으면 자신이 더 힘이 있던가 해야겠죠.

물론 미국도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받은 인상은 미국이 북한의 요구가 뭔지를 알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협상이란 것이 성사되려면 우선 상대가 부르는 가격부터 알아야 합니다. 북한이 유일한 재산인 핵무기를 들고 나왔으면 그거 얼마에 팔 것인지 물어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초보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대신 내가 이거이거 줄 테니 팔라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접근 방법이 달랐고, 생각의 사고 구조가 달라 주고받는 외교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북한 외교관들의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가령 실례를 든다면 이런 것입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북한에 큰 수혜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북한이 70년 가까이 정전협정 체제에서 살아왔는데 평화협정 당장 안했다고 급한 게 있습니까. 그건 김정은 입장에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리 시급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은 “그거 말고, 우리 급한 게 따로 있소”라고 하고 싶은데, 미국은 우리 이런 걸 혜택으로 주겠으니 고맙다고 받고 핵 폐기해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협상이 미래가 밝을 것 같지 못해 미국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뉴욕에 가서 유엔에 나온 세계 22개국 대표단과 면담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유엔에 있는 세계 각국의 대표단이 북한에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인권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질문도 정치범수용소와 정치범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좋은데, 그들이 갖고 있는 관념이 20년 전쯤에 머물러 있어 놀랐습니다. 이제는 북한도 상당히 변했는데, 그걸 잘 모르더군요. 왜냐면 지금까지 유엔에 와서 증언한 사람들이 가장 참혹한 옛날 얘기만 했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아는 우리는 북한의 변화된 상황에 대해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어쩌면 김정은이 좋아할 얘기들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실을 다루는 기자들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면서 이런 교류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워싱턴에서 북한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 인사들을 만나 북미회담이 꼭 잘 풀리길 바라는 입장에 서서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진심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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