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공을 우회하는 비행기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0-1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사진은 지난해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탑승한 특별기가 5일 평양을 향해 서울공항에서 이륙하는 모습.
사진은 지난해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탑승한 특별기가 5일 평양을 향해 서울공항에서 이륙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에 와서 제가 그리운 것 중에 하나가 쏟아지는 별들을 황홀하게 볼 수 있었던 고향의 밤하늘입니다. 여기 서울에선 온 도시가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니 별을 보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서울을 떠나 외진 곳에선 별을 볼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별은 고향의 별무리만큼 또렷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진 데라고 해도, 한국 전체가 전반적으로 밝다보니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미국의 자연림 숲 속에 가서 하늘을 봐도 북한보다 못하더군요. 아무래도 북한은 온 나라가 어두컴컴하니 빛 간섭 현상이 없어 별이 그렇게 또렷하고 반짝반짝했던 것 같습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별똥별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낙이죠. 그 밤하늘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수많은 전파들이 날아다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듣는 이 라디오 방송 역시 전파가 뻥 뚫린 밤하늘을 날아가 여러분들의 라디오까지 도착합니다. 하늘은 늘 우리 머리 위에 있어 의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그 하늘에서 달러도 떨어진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이건 또 무슨 소리냐 하겠죠. 그런데 진짜 그렇습니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면 북한은 영공 통과료 명목으로 달러를 받습니다. 비행기 크기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서 1대당 얼마라고 딱히 말하긴 어렵습니다. 북한은 하늘 사용비를 받으면 돈이 된다는 것을 꽤 늦게 알았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던 1994년 12월에야 급해서 영공개방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비행기가 자국 하늘을 지나면 비밀이 샌다고 우려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건 이미 미국의 고공정찰기 성능이 우수해 굳이 북한 허락을 받지 않고 날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1994년 영공개방을 선언하고 1995년 2월에 국제항공업무 통과협정에 가입합니다. 그런데 북한 하늘로 가장 많이 날아다닐 수 있는 나라가 어디겠습니까? 바로 한국입니다. 그래서 1997년에 방콕에서 남북이 모여 앉아 이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비행기가 북한 상공을 날 때 그냥 나는 것이 아니고 평양 관제탑과 교신을 하게 되는데 그 통신망 구축도 논의하고 가격도 협의해야 하고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잘 풀렸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가부터 한국 항공기가 북한 상공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매년 수백 만 달러씩 챙겨갔습니다.

북한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 것은 아니고 국제민간항공기구 자료에 근거해 상공을 통과하는 항공기에 대해 최대이륙중량에 따라 가격을 불렀습니다. 싼 경비행기는 90유로쯤 받고 큰 비행기는 700유로 정도 받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와 같은 한국 항공사들이 바보라서 북에 돈을 주고 비행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를 분석해 보면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경우 한국 항공사들은 연간 2140만 달러의 기름값을 절약하고 운항 시간도 3900여 시간 단축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대신 북한은 7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얻습니다. 차익을 감안해도 한국 항공사들이 얻는 이익이 1500만 달러 정도 더 많습니다.

돈보다 저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 비행기가 유럽·미주로 가려면 북측 영공을 피해 중국과 일본 등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항로 각도만 살짝 틀어도 거리는 수백㎞ 늘어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가령 인천에서 유럽으로 갈 때는 북측 영공을 피해 지금 중국 쪽으로 우회해 가고 있고, 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나 캄차카반도 방향이나 미주로 갈 때도 북측에서 멀리 떨어진 항공로를 택하고 있습니다.

국내 항공사들이 북한 영공을 통과할 경우 인천-미국 노선 운항은 200∼500㎞를 절약해 미 동부지역까지는 34분, 서부지역 비행시간이 20분 정도 단축될 전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갈 때도 북한 영공이 열린다면 비행시간을 40분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20~30분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해마다 몇 백만 명의 바쁜 승객들이 각자 비행기에 앉아있는 20~30분을 줄인다고 보면 이건 엄청난 경제적 효과로 이어집니다.

북한 하늘이 막힌 것은 2010년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해 침몰시킨 이후 한국 정부가 5.24 조치라는 대북 제재 조치로 우리 항공기의 북한 영공 통과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피해를 보지만 북한도 피해를 보라는 것인데, 대북제재라는 것이 늘 이런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가 유엔에서 발효된 이후로 지금은 한국 정부가 5.24조치를 해제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왜냐면 항공료를 주면 이게 제재 위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9년째 매년 10만 대 가까운 한국 항공기들은 북한 하늘을 에돌아갑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일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영공 통과비용으로 한국 항공사가 일본에 지불한 비용은 매년 5000만 달러 가까이 됩니다. 이 돈의 절반이 북한 영공을 통과하지 못해 에돌아가느라 낸 비용이라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돈이죠.

북에 돈을 주지 않겠다고 우리는 돈과 시간의 피해를 감수하며 일본만 좋아지게 돕는 꼴이 됐습니다. 답답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고, 그렇다고 대북제재를 위반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저는 북한이 빨리 핵을 폐기하고 제재도 풀고, 하늘까지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이전에 저는 미국을 가면서 여러 차례 북한 하늘을 날았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일부러 창문 옆에 앉아 북한의 산하를 내려다보면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10년이 넘으니 그게 언제적 일인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집니다.

제가 지금 미국에 와 있는데 올 때도 그랬지만 돌아갈 때도 북한 하늘을 에돌아가야 할 겁니다. 이번은 아니지만 제가 다시 북한의 하늘을 날아가는 날이 꼭 오게 될까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