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 10%가 사망한 사건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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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특각(별장) 모습.
김정일 특각(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에 살다 왔고, 또 지금까지 기자로 있으며 인생 전체를 북한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북한처럼 철저히 정보를 차단하는 곳에선 안에서 산다고 해도 알기 어려운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저도 북에 살 때 전혀 몰랐던 충격적 사건 하나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무려 외교부 전체 인원의 10%에 해당하는 외교관 150명이 김정일을 위한 전용 수족관 건설에 동원됐다가 한꺼번에 불에 타 죽은 끔찍한 사건입니다.

독재자의 향락을 위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정말 오랫동안 회자될 사건이지만, 정보를 꽁꽁 틀어막고 사는 폐쇄의 왕국 북한에선 외교관이 10% 넘게 하루아침에 죽어도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일이긴 하지만 늦게라도 북한 동포 여러분들이 이런 끔찍한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어 전해드립니다. 이 사건은 북에서 외교관으로 있다가 탈북 해 현재 서울에서 사시는 분 세 명에게서 교차 확인한 내용입니다.

북한 평양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보통강을 끼고 북한 최고 수재학교라는 평양 제1고등중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터에는 150여명의 억울한 영혼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원래 그 자리는 1고등이 들어서기 전에 사회안전성 병원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김정일 집무실인 중앙당 청사와도 멀지 않은 곳이니 엄청 노른자위 땅이었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권력을 잡은 김정일은 전국 각지에 김 씨 일가 전용 특각을 짓고 5과라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들을 뽑아 자기를 섬기게 하는 소위 기쁨조 선발을 시작했습니다. 혁명이니 인민이니 다 거짓말이고 그야말로 왕이 돼서 개인적인 사치향락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 이런 특각을 여기저기 짓고 여성을 섬겨 바치는 일을 담당하며 김정일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쓴 사람이 바로 장성택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사회안전성 병원터 자리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1970년대 말에 병원을 옮기고 이곳에 김정일을 위한 전용 수족관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양 시민들을 위한 수족관이 아니냐고 거듭 물었지만, 대답해 주신 분들이 그건 김정일 전용 수족관이었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당시엔 김정일 전용 특각을 담당해 건설하는 제1공병총국 같은 전문 부대가 없다보니 수족관 건설에는 외교부에서 선발된 인원들과 재외 대기자들이 충성의 건설이란 명목으로 동원됐습니다. 재외 대기자란 해외 발령을 앞두고 있거나 또는 해외 공관에서 귀국했거나 들어와서 당 생활총화하는 인원들인데 이때 재외대기자는 약 60명 정도 동원됐습니다. 아마 외국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 동원해야 말이 북한 내에서 퍼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1979년 초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완공될 일정이 불투명해지자 외교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겨울에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합선으로 인한 화재였다고 합니다. 불에 타기 쉬운 온갖 자재가 쌓여 있던 상황이라 불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화재가 나면 사람부터 피하면 처벌 받습니다. 집에 불이 나도 제일 먼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부터 떼어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북에서 초상화는 집에 건다고 말하지 않고, 초상화를 모신다고 말하는데 사람과 똑같은 반열로 간주하는 것이죠. 초상화를 놔두고 돈이나 귀중품부터 챙겨 나왔다면 충성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는 또 지진이 나도 땅에 떨어져 박살나지 않게 뒤에 못을 든든히 박고 여기에 끈으로 단단히 묶어 놓지 않습니까. 불이나 새까만 연기가 꽉 찬 방에서 풀어지지 않는 끈과 씨름하며 초상화를 꺼내오려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종이장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곳이 북한입니다.

심지어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 죽어도 김 씨 부자 초상화를 품에 안고 죽으라는 것이 북한입니다. 표류하다 한국 해군에게 발견되자 초상화 빼앗기지 않겠다고 연 덩어리를 몸에 품고 바다에 빠져 죽은 선장을 영웅이라면서 교과서까지 실어 선전하는 북한입니다. 그깟 종이장 다시 찍는데 얼마나 든다고 사람 목숨보다 중합니까.

이런 북한에서 김정일 전용 건물에서 불이 났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먼저 도망치면 무조건 처벌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외교관들입니다. 사람들이 대피할 생각보단 어떻게 하나 불을 끄려 하고, 안에서 하나라도 더 꺼내오려 목숨을 거는 겁니다. 그러다가 폭발이 나서 한꺼번에 150여명이 죽었고, 이는 북한 외교부 전체 인력의 10% 넘는다고 합니다. 최고 외교 엘리트들이 순간에 새까만 숯덩이가 됐으니 얼마나 끔찍한 비극입니까.

그런데 북한은 이 사건을 소문나지 않게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죽은 사람에겐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었습니다. 그냥 애국열사증이란 증서 하나만 주었습니다. 원래 북한은 보험이란 것이 없으니 누구라도 죽으면 보상 같은 것도 없으니 사람 목숨이 그냥 증서 하나로 교환되는 것입니다.

다만 당시 사망자 부인의 경우 외교부 초대소나 행정 부처에서 일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80년대 초반 외교부엔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숱한 사람이 죽은 자리에 수족관 건설은 중단됐고, 대신 1984년 평양 1고등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북한 최고 수재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외국인이 가면 참관을 많이 시키는 곳입니다. 남쪽에서도 이곳을 참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양 1고등은 북한 티비에서도 영재교육을 잘 시킨다면서 수시로 나오는 곳입니다. 그걸 보실 때마다 그 학교 자리에 41년 전 독재자의 향락을 위해 불에 타죽은 외교관 150여 명의 억울한 원혼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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