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낮에도 자본주의?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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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북도 서흥군에 사는 리봉녀 할머니가 텃밭에서 배추를 가꾸고 있다.
북한 황해북도 서흥군에 사는 리봉녀 할머니가 텃밭에서 배추를 가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농사가 다 끝나 지금은 탈곡, 분배가 한창이겠죠. 과거 북한 중앙TV를 통해 이맘때쯤이면 만경대구역 국영농장, 청산리협동농장들에서 수 톤의 식량분배와 몇 만원의 현금 분배를 받으면서 농민들이 기뻐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노래에도 있죠.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쓰나? 배 나무집 노친, 배 나무집 영감, 밤새껏 토론하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수십 년째 아직도 전체 인민이 달라붙어 농사에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나니 농사와 관련된 당의 구호, 표어, 인민들의 유머들이 넘쳐납니다. ‘수령은 농업전선의 최고사령관.’ ‘농사도 전투이다.’ ‘올해 농사를 제철에 와닥닥 끝내자.’ ‘밥술을 뜨는 사람이면 모조리 농촌동원에 나와라.’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 이것을 사람들은 ‘농장포전은 너의 포전.’이라고 바꿔서 부르기도 했죠.

봄철 맨 처음으로 동원돼 진행하는 강냉이 영양단지 파종은 학생들이 대부분 맡아한다고 해서 ‘영양단지는 학생단지’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모내기철, 추수철에 전국적인 지원이 있어 일은 안하고 이들을 지도만 하면서 논두렁길을 종횡 무진한다고 해서 이런 농민을 가리켜 생긴 말이 ‘지도농민’입니다.

대체로 농장들에서 많이 생산되는 밀주인 뿌연 술을 일명 ‘농태기’라고도 불렀습니다. 농민시장에 나가면 할머니들이 광고하는 담배판매 문구들도 압권입니다. 마라초(말아서 피우는) 담배가 너무 독하다는 것을 ‘팽돔!’ ‘마누라 헷갈림!’ ‘전봇대잡고 30초!’등의 기발한 표현들로 홍보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마 김장전투도 다 끝났겠죠. 해마다 반년식량이라고 일인당 한 100kg, 한독 정도씩 김장을 담갔죠. 식구가 많은 집은 배추 1톤, 2톤, 막 이렇게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저마다 자랑했죠. 배추 꼬기가 잘 들지 않은 것들은 일명 ‘치마 배추’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그리고 김정은 시대 들어 포전담당 책임제를 좀 더 강화하면서 북한의 농촌풍경이 바뀌고 있죠.

요즘은 가족단위로 3-4명 정도씩 더 축소돼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분조관리제가 가족 또는 개인책임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죠. 이들에게 일정정도의 논이나 밭을 맡겨 농사를 짓게 하고는 국가수매 분을 탈곡장에서 곧바로 납부하게 하고 나머지는 분매 몫으로 준다고 합니다.

기름, 비료, 농약 등 농자재들도 자체로 해결해야한다면서요. 그리고 작물 선택, 초과분의 식량 또는 농산물 판매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인가요, 일부 국제기구, 단체들에서 작년 북한의 식량작황이 10년래 최악이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쁘다고 예상하고 있는데 시장의 식량 가격은 그렇지 않습니다.

2017년에 비해 입쌀은 작년 한 20%정도 비싸졌고 강냉이도 영향을 받았지만,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매우 안정적입니다. 대북제재 하에서도 포전담당제가 큰 은을 발하는 모양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낮에는 사회주의, 밤에는 자본주의.’ 그런데 요즘 농사는 낮에도 자본주의를 하나보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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