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영웅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2-03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사진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에 앞서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에 앞서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영웅을 많이 만들어 내는 곳이지요

지난 연말과 연초에 한국의 1세대 기업인들이 연이어 타계했지요? 이들을 우린 보통 애국자이자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영웅에 대해 또한 통일 영웅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대우그룹을 이끌던 김우중, LG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구자경, 롯데그룹의 신화를 만들어 낸 신격호 등이 연이어 저 세상으로 떠났군요. 이들은 기업가였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지적한대로 애국자이자 영웅이었어요. 사람들은 기업가를 영웅으로 보는 데는 인색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의 1세대 기업가들은 사업 이전에 나라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탈세를 하고 기업이윤만 앞세워 노동자를 착취했다지만 결국은 성공한 산업화의 주역이였지요. 그래서 이들을 떠나 보내면서 사회장이라도 치러야 했던 게 아니겠냐는 생각도 듭니다.

영웅이라면 대체로는 군인이나 정치가 중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정주영 같은 분은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돈키호테 같은 짓이라 했지만 그게 지금 보면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은 그 때 장사를 하러 휴전선을 넘은 게 아닙니다. 그의 가슴에는 실향민으로서의 한이 맺혀 있었지요. 그의 뜻대로 남북한이 오고 가고 서로 어려운 부분을 돕고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중간에 헝클어져서 아쉽지요.

영웅이라면 전과 달리 오늘날에는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되는 시대라고 하잖습니까?

임채욱 선생: 영웅은 본래 평범하지 않는 비범한 사람을 말합니다. 비범한 사람은 옛날식으로 말하면 군자다, 현인이다, 성인이다 하는 사람처럼 도덕적으로 인격이 뛰어났거나 호걸처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지요. 영웅은 이 둘을 다 갖춘 사람을 일컫지요.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영웅을 규정한다면 도덕면이나 능력면 둘 다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이어야 하지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느 한 면만 두드러져도 영웅대접을 받지요.

흔히 영웅호걸이라 하는데 이들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지요?

임채욱 선생: 네, 영웅호걸이니 영준호걸(英俊豪傑)이라 할 때 영(英)은 보통 사람 만 명을 당해 낼수 있는 사람이고 준(俊)은 천명, 호(豪)는 백명, 걸(傑)은 열명을 당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기준대로라면 영웅이나 준걸은 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조금만 뛰어난 면모가 있으면 영웅이라고 호칭하고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영웅도 따지고 보면 시대의 산물이니 옛날처럼 반신반인(半神半人), 반은 신이고 반은 사람인 초능력자만을 뜻하지는 않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국에는 야구영웅도 있고 골프영웅도 있으며 소방영웅, 환경영웅도 있지요.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영웅을 일컬어 ‘인류사회에서 수출(秀出)한 자’라고 했는데 이처럼 어지간한 수준급 스타가 되면 영웅이라 불려도 되지요. 단재 영웅론을 한 마디만 더 하면 애국자이던 그에게는 당시 나라를 잃은 처지에서 국권회복에 노력하는 지사이면 모두가 영웅이라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영웅이라면 북한에서도 많이 찾는 존재지요. 북한의 영웅관은 특별한 건지요?

임채욱 선생: 영웅이라면 북한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영웅을 많이 만들어 내는 곳이지요. 어떤 한 해, 그러니까 1995년인데 이 한 해에 154사람의 영웅을 만들어 냈지요. 그때 이른바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면서 영웅의 존재가 필요했겠지만 주민 모두에게 김정일을 따라 영웅이 되라고 독려하고 촉구했지요.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영웅을 많이 만들어 내려고 영웅동상을 한 해 100여개를 세우기도 하고 영웅이 나왔다는 학교는 이름도 영웅 무슨 학교하는 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북한에서 이렇게 영웅을 양산하는 데는 선대통치자 김정일의 영웅관도 한 몫 한다고 보겠습니다.

김정일의 영웅관은 어떤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김정일이 1988년 5월에 당 책임일꾼들과 담화를 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당은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이 될 것을 요구하며 또 우리사회에서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착취계급 사회에서는 비범한 기질을 가진 걸출한 사람만을 영웅이라고 하였지만 우리가 말하는 영웅은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을 위한 투쟁에서 세운 위훈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도 어떤 공훈을 세우면 다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인데, 열네살 소년이 혼자 산불을 껐다든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어도 막장에 들어가서 자기 몸이 착암기가 돼서 일했다든가 한 사례가 그런 것 일만큼 영웅이 참 많지요. 막사에 수류탄이 떨어지자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지키려고 몸으로 수류탄을 막았다든가 추락하는 비행기를 몰면서 김일성 동상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비행기와 함께 자폭했다든가 하는 사례는 너무 많아서 육탄영웅, 자폭영웅, 총폭탄 영웅 등 온갖 영웅들이 다 있지요.

북한에서는 ‘전 인민의 영웅화’를 하려 했다고 평가해도 되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학교교육을 통해서도 영웅을 만들어내고 각종노력 경쟁운동을 통해서도 영웅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남쪽 해상에서 표류했다가 돌아간 병사도 영웅이 됩니다. 전 주민의 영웅화를 고취하기 위해 1988년 9월에는 ‘전국영웅대회’를 열기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웅 만들기 같은 것은 없어도 대중 문화가 낳은 영웅은 많지요?

그렇겠네요. 스포츠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선수가 많아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지요. 뭣보다 BTS,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인 음악영웅이 아닐까요? 지난 연말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150만명이 방탄의 노래를 듣고 환호했다니 그게 영웅적이지요. 하지만 최근 탈북자들의 영웅적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북한을 벗어나는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탈북 영웅들이지요. 이들 탈북 영웅들은 앞으로 통일 영웅으로 그 역할도 다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 정주영 같은 사람은 사실 통일영웅 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1989년에 밀 입북한 남쪽 여대생을 통일영웅이라 이름 붙였지만 나라의 법을 어기고 간 것도 영웅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탈북자들 3만 명은 잠재적인 통일영웅일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게 봅니다. 통일영웅은 어느 특출한 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앞에서 말한 영웅관에 비춰보면 남 북한 국민이나 인민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통일영웅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목메어 불러보고 싶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