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에 대한 남북한의 이해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8-1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경남 산청군 동의보감촌 내 한의학박물관에 전시된 동의보감.
경남 산청군 동의보감촌 내 한의학박물관에 전시된 동의보감.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민족고전학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쓴 책이나 기록들을 포괄합니다. 여기에는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고전이 있고

8월은 광복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분단을 상기시키는 달입니다. 학문, 그것도 고전을 다루는 분야에도 남북분단은 심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렇지요. 이데올로기가 덜 개재됐을 것 같은 고전문학분야도 대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해석이 다릅니다. 우선 우리 민족의 고전문학을 남쪽에서는 국문학으로 개념설정을 합니다. 하지만 북쪽에서는 민족고전문학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민족고전학에서 온 것인데 민족고전학이란 개념은 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북쪽 통치자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문헌에서는 김정일, 그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족고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출현시킨 사람이라고 내세웁니다.

학자들이 할 일을 통치자가 직접 했군요. 민족고전학은 어떤 것인데요?

임채욱 선생: 민족고전학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쓴 책이나 기록들을 포괄합니다. 여기에는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고전이 있고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같은 문학고전도 있고 <동의보감>이나 <의방류취> 같은 의학고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분야 할 것 없이 문자로 기록된 문헌은 다 고전학의 대상이 되지요.

그럼 오늘은 민족고전학의 대상 중에서 문학고전에 한정지어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문학고전의 범위는 대체로 현대문학을 제외한 근대문학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고조선 시대로부터 갑오경장 시기까지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문학작품들이지요. 민족항일기와 분단이후의 작품은 대상에서 빠지니까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냄새는 나지 않겠다고 보겠지만 그렇지가 않지요. 여기에도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지요.

구체적으로 하나씩 보면 어떤 것이 가장 특징적입니까?

임채욱 선생: 작품이름들이 차이를 들어냅니다. 북한에서는 본래 작품이름 대신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릅니다. 임제, 호는 백호입니다만 임백호가 지은 <수성지(愁城誌)라는 작품을 <시름에 쌓인 성>으로 고치고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을 <리생과 최랑의 사랑>으로 고칩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만복사의 윷놀이>로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부벽정의 달맞이>로 고쳐집니다. 또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은 <룡궁의 상량잔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남염부주 이야기>로 바뀝니다. <최치원설화>는 <두 여자의 무덤>이라고 됩니다.

이런 작품이름 변경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문 투의 작품이름을 우리말로 고친 것을 두고 찬반이 갈라지겠지만 대체로는 긍정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자음을 단순히 한글로 바꾼 것이 아니고 작품의 내용을 따라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한 것입니다. <최치원설화>가 <두 여자의 무덤>이 된 것이 본래 작품명칭이 <최치원>이지만 다른 이름이 <쌍녀분>이기 때문에 <두 여자의 무덤>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수성지>를 <시름에 쌓인 성>으로 한 것은 현실풍자의 작품내용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럼 고전문학작품을 평가하는데서 남북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어떤 내용들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많은 작품들 다 볼수는 없고 한 두 가지만 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장화홍련전>은 계모가 전처 두 딸을 학대하는 가정형계모소설의 전형이라 할 만 하지요. 북한에서는 장화와 홍련 두 자매가 받는 비극은 봉건적 가족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못 박지요. 재물에 눈이 어두워 전처소생을 구박하고 학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사유재산을 가지고 상속하는 봉건 가족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혼령이 나중에 풀리는 것도 고을 관원의 멋진 의협심 때문인데 이를 좋게 보지 않지요. 봉건사회라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개별 관리가 해결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봉건사회의 모순을 결코 지방관리로서는 해결 못한다는 관점이지요.

다음 <운영전>이란 작품을 한번 볼까요? 이 소설은 김진사라는 젊은이와 운영이라는 궁녀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데, 고전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가집니다. 운영과 김진사는 자유로운 사랑을 제약하는 제도적인 올가미를 없애려다가 희생되지만 두꺼운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의식이 평가를 받고 있지요. 북한에서는 이 작품을 두고 남녀 사랑을 짓밟는 봉건압제에 굴하지 않고 자기 지향을 실현시키려고 생명도 바치는 것이라고 좋게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실주의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밖에 우리가 잘하는 <춘향전>이나 <심청전>에서는 해석상의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작품해석이 아니라 작품의 창작시대를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동동>이라는 가요가 있습니다. 멀리 떠나가 있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사랑을 12달로 나눠서 노래하는 작품이지요. <동동>이란 제목은 후렴마다 “아으 동동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요. 이 가요를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가요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고려시대부터 구전돼서 내려오다가 조선조에 들어와서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동동>가요를 고려가 아닌 고구려 가요라고 이해합니다. <동동>이란 가요가 고구려 때 만들어 진 동동춤과 결합돼 있고 일년 12달로 나눠서 노래하는 달거리체 형식의 가요작품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고전시가작품에서 달거리체 형식을 처음 쓴 것이 이 <동동>이라고 합니다.

고려시기와 고구려시기로 작품이 나온 시대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데, 북한학자들이 고구려라고 주장하는 어떤 근거는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15세기 말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이 동동춤을 보고 묻자 성종이 이 춤은 고구려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인데 동동춤이라고 부른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성종실록 132권 12년 8월 을사일) 이에 근거를 둔 것 같습니다.

고전문학분야 남북한 학자들이 토론을 해봐야 될 사안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이렇듯 남북한 사이에는 분단의 세월만큼 달라진 것도 많으니까 서로가 차이를 찾아내고 접근해서 토론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많다고 봐야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