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공산화 (3)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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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첫 헌법을 통과시킨 몽골 국회(State Great Khural)의 모습.
1924년 첫 헌법을 통과시킨 몽골 국회(State Great Khural)의 모습.
Photo courtesy of Wikipedia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지난 시간에 몽골인민당 지도자들이 1920년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전투구보다 더 끔찍한 개싸움을 벌였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치열했습니까?

란코프 교수: 진짜 미친 듯이 싸웠습니다. 당시에 몽골인민당 지도부의 5-6명 가운데 1920년대 말까지 숙청당하거나 처형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뿐입니다. 나중에 1930년대 몽골의 독재자가 된 ‘처이발상’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몽골혁명에 많이 참여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몽골인민당의 다른 고급간부들은 1920년에 서로 밀고하고 처형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몽골인민당의 초대 총비서는 1924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후임자는 1930년대 독약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세번째 지도자는 1930년대 초 감옥에 들어갔고, 1931년 처형되었습니다. 네번째 지도자는 운이 좋았는데 젊은 나이에 진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몽골인민당의 여섯번째 지도자는 1937년에 처형되었습니다. 여덟 번째 지도자는 41년에 체포되고, 처형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계속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마 1920년대 중엽부터 30년대 중엽까지의 몽골만큼 살인적인 공산주의 국가가 없었습니다.

전: 그런데 교수님, 그들은 왜 그렇게 서로 죽이고 죽었을까요? 당시 지역 정세를 보면 중국은 몽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만주 지역에서는 일본제국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 몽골 지도부가 진정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것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이었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흥미롭게도 몽골의 경우 이러한 전례 없는 살인적인 개싸움은 실제 정치노선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기본 이유는 당시에 나라를 사실상 통치하는 세력은 소련 대사와 주몽골 소련군 사령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몽골 간부들은 미친 듯이 서로 죽이고 있었는데, 기본이유는 정치 노선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그냥 개인 야심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외부 위협을 무릅쓸 수도 있었습니다. 1930년대 초까지 몽골을 침략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심각한 혼란상태였고, 또 소련군대가 몽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1930년대 들어와 일본제국도 열심히 대륙 침략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해서, 그들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1939년에 일본과 몽골은 비교적 큰 전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소련의 후원 덕분에 몽골은 외부 위협을 무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흥미로운 특징이 있는데요. 소련은 당시에 몽골을 자신의 속국으로 여겼는데, 공식적으로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1911년 독립선언 때부터 1946년까지 몽골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몽골정부와 수교한 외국 정부도 몇 개밖에 없었습니다.

전: 소련은 왜 몽골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당시에 소련은 몽골을 가치가 많은 완충지대라고 생각했지만, 소련의 대아시아 정책의 핵심은 대중국 정책이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몽골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은 중국이 어떻게 될 지 몰랐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 좋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전: 그러면 몽골인민공화국의 국내정책은 어땠습니까?

란코프: 당연히 몽골은 소련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문제는 당시에 몽골에서 아무 공업이 없다고 해도 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몽골에서 제일 큰 기업소는 차량수리소나 식량가공 공장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공산당 정부는 미친 개싸움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학교가 많이 생겼고, 머리가 좋은 젊은이들은 소련 유학으로 많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보건부문에서도 성공이 많았습니다. 예방주사 및 위생교육 덕분에 그 전에 매우 높았던 유아사망률은 빨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 매우 높은 유아사망률 때문에 몽골민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몽골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도 공산주의 정권의 정책 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당시 몽골에는 공업이 거의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산업이 근간을 이뤘습니까?

란코프: 당시에 몽골에서 농업보다는 유목업이었습니다. 기술수준은 사실상 중세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1930년대 들어와 몽골인민혁명당, 즉 몽골공산당은 집단화 정책을 시작했는데, 중앙아시아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유목민 지역에서는 농업집단화는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몽골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몽골에서 집단화가 시작하자, 거의 즉각적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은 그냥 죽는 것보다는 봉기를 시작했습니다. 몽골공산당의 정치, 특히 집단화정책에 도전한 1932년에 시작한 봉기는 공산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공산정권은 봉기를 성공적으로 진압했지만, 사실상 백성들에게 굴복했습니다. 그들은 소련에서 허락을 받고 집단화 정책을 공식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이것도 공산권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역사에서 집단화를 시도하다가 인민항쟁 때문에 집단화를 취소한 나라는 몽골과 1956년 이후 집단화를 취소한 뽈스카입니다. 결국 몽골에서는 1960년대까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소, 말, 양을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전: 집단화란 것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죠.

란코프: 집단화란 건 농민이든 유목민이든 개인들이 농사짓거나 가축 키우는 게 아니라 모두 협동농장 집단농장에 가입토록 했습니다. 공산당의 정책입니다. 말로만 협동농장이지 사실상 국가소유의 국영농장입니다.

전: 몽골 공산정권은 소련 군대를 등에 업고 집단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강제 집단화가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몽골 지도자들도 소련도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유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에서 집단화를 통해서 얻을 게 많지 않고, 민중의 항쟁이 너무 심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시에 몽골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공산당간부들은 권력에 대해서 야심이 많았는데, 그저 단순히 미친 살인가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할 꿈에 부풀어서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죽이고, 자신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 당시 몽골에서 집단화 취소와 같은 사건 외에 어떤 국내정치 사건이 주목할 만 했나요?

란코프: 제일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처이발상’의 등장입니다. 1895년에 태어난 처이발상은 원래 몽골혁명 때 인민혁명당 고급간부로 활동했는데, 눈치가 빠를 뿐만 아니라 운도 좋아서 살인적인 1920년대 숙청과 개싸움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1930년대 중엽 들어와 몽골에서 최고통치자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 그는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소련출신 부랴트인들까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많이 숙청했습니다. 스딸린은 그를 신임했기 때문에 부랴트인 숙청까지도 묵인했습니다. 결국 1935년을 전후하여 수 십 년 동안 별 변함없이 계속된 몽골인민공화국의 정치 사회 구조가 굳어졌습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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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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