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 현충원 봉사 (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11-24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학생, 시민들이 묘소의 잡초를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학생, 시민들이 묘소의 잡초를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순국선열이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가 목숨을 바친 분을 말하는데요.

남한은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존경을 표하는 법정 기념일을 제정해

순국선열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11월 17일 순국 선열의 날인데요.

 

올해로 81번째를 맞이하는 이날,

탈북민 100여명이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36.3도요. / 여기 기준으로 서겠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현충원!

이곳은 독립유공자와 6.25 전쟁 참전 용사

그리고 경찰, 대통령 등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를 안장한 국립묘지입니다

그들의 노력과 명예를 국가가 인정해 줬다는 상징성이 강한 곳이죠.

 

바로 여기에 100여명의 탈북민들이 모였습니다.

국립묘지 안의 묘비를 닦고 묘역을 정리하는 봉사를 할 예정인데요.

아무리 좋은 일로 모여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 요즘,

참석자 체온과 명단 확인은 필수입니다.

 

인서트2: (현장음) 발열 체크 안 하신 분 계세요? 발열 체크! / 어디서 오셨죠? / 나.. 적었는데.. / 없으신 분들은 여기 뒤에다 적으세요. / 추가로 오신 분들이 많아서~~

 

이날 참석한 탈북민들은 남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 봉사 단체들과 그 회원들.

이 단체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탈북민 출신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지성호 의원실, 박영철 비서의 말입니다.

 

인서트3: (박영철) 여기 참여한 분들은 20대부터 80대 고령의 나이 많으신 분들도 참석 했거든요. 굉장히 의미 있는 게 저희가 베풀 기회가 없어요.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그러니까 탈북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전하고 따뜻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활동을 통해서 탈북민들이 좀 더 성숙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오늘 날짜를 잡았습니다.

 

100여 명의 탈북민들이 현충탑을 향해 걷습니다.

현충탑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고

이 탑을 중심으로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묘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묘역을 청소하는 봉사활동은 우선 이곳, 현충탑을 지나야 하는데요.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 속에 참배와 묵념으로 봉사활동이 시작됩니다.

 

인서트4: (현장음) 다 함께 참배 드리겠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에 대하여 경례. 바로. 일동 묵념

 

참배를 마친 사람들은 묘역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데요.

전쟁 중 전사했으나 유골이나 시신을 찾지 못한 분들을 모시는 위패봉안관과 충혼당을 나오니

화단에 앉아 계신 어르신 한 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현충원에 계단이 워낙 많다 보니 한숨 돌리고 계시네요.

 

인서트5: 저는 노원구에 살아요. 김영숙이. 나이는 79세고요. (한국에) 온지 10년 되도 여기를 못 와 봤거든요. 이번에 우리 딸이 온다고 해서 왔어요. 여기(현충원) 온다고 해서 기어코 따라 왔어요. 전쟁 시기에 영웅들을 모신 곳 아니에요? 여기에 우리 자식 같은 분도 있고 아버지 같은 분들도 있고.. 많겠는데 (직접) 보니까 눈물이 나네요. 여기를 오니까요. / (리포터) 무슨 생각이 나셔서… / (김영숙) 북한에 있는 자식들 생각도 나고 여기 묻힌 사람들도 다 제 동생 같고 아들 같은 분들이 묻혀 있겠는데..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 충열대에 오르는 사람들.

충열대는 애국지사묘역, 임시정부요인묘역 등에 모셔진 선열의 얼을 포괄적으로 추모하는 제단인데요.

3.1운동 민족대표와 항일무장투쟁, 계몽운동을 한 애국지사 350여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면 수만 개의 묘비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인서트6: (현장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총18만 4천여분이 안장이 되어 계시죠. 그분들 중에 유해가 수습되고 신원이 확인된 5만4천여 분은 이렇게 묘역에 모셨고요. 10만 9천여분은 봉안 시설인 충혼당에 모셨습니다~

 

제1묘역부터 56묘역까지 143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안장된 5만 기의 묘.

목이 메 낮은 한숨을 내쉬며 김영숙 할머니는 한참동안 묘비를 둘러봅니다.

코로나비루스로 마음 편히 나들이 하기도 힘들어서 가을 단풍놀이하는 기분으로 나섰는데

현충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참배를 한 뒤 눈 앞에 즐비한 묘비석을 보니 자꾸 눈가가 촉촉해 집니다.

 

인서트7: (김영숙) 가슴이 울커덕 하네요. 그런데 한결같이 (묘역 관리를) 해줬으니까, 이분들도 고이 잠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탈북)청년들이 적극 나서서 이 묘지도 관리해주면 좋은 일이죠. 저도 웬만하면 보름에 한 번씩 와서 관리를 해드려도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이제는 (건강문제로) 힘들어서 그게 애석해요. 오늘 여기에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앞으로 죽기 전에 한 번 더 와서 기도 드리고 가겠습니다.

 

이날 국립현충원을 찾은 최고령 봉사자는 39년생 올해 83세의 최분단, 장춘란 할머니셨습니다.

또 이날 봉사의 가장 막내는 2천년생 두 명입니다.

탈북민 대안학교 학생인데요. 오랜만의 야외 봉사 활동이랍니다.

 

인서트8: (학생 인터뷰 모음) 이분들 때문에 저희가 행복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되게 밝게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 생각이 조금 없이 살았다고 하면 앞으로는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기르는 게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하게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 저는 이런 봉사활동을 많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현충원에 처음 와봤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10대 시절을 북한에서 보내고 20대를 한국에서 지내는 청년들은

현충원을 보고 떠오르는 곳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인서트9: (학생 인터뷰 모음) 북한에도 이렇게 대성산 혁명 열사릉이라고 있는데 거기는 참배를 못해봤지만 거기에서도 뭐 이렇게 국군과 싸워서 희생하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 딱히 어떤 분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고 그냥 그 주위에서 되게 많이 놀았어요. / 어떻게 보면 우리 할아버지의 세대의 적군의 묘지에 지금 우리가 있잖아요, 아니 내가 있잖아요. 어쨌던 각자 이념을 가지고 전쟁을 했지만 그 다음다음 세대가 북한의 정권이 싫어서 탈출한 사람도 있고 그 부모를 따라 온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거기서 따라오는 오묘한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제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Closing-

묘비를 앞에 두고 누구는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을

누구는 북한에 묻혀있는 가족을

또 누구는 고향을 떠올렸던 사람들…

그러나 모두 공통된 생각 하나는 있었을 겁니다.

이들의 희생에 오늘이 있음을 감사하며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소망…

 

탈북민들의 현충원 봉사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 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