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복떡공방, 김지현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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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꼬리떡.
북한 꼬리떡.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떡전문점 ‘청진복떡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지현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현 씨의 고향, 청진을 떡집 이름으로 쓸 만큼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요. 떡도 한국식이 아니라 북한식 떡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마순희: 네 맞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 떡들을 주문해서 다 먹어 보기도 했는데요. 가장 인기있는 것은 떡케이크인 것 같습니다. 알록달록 색을 입힌 쌀반죽으로 꽃잎을 만들어서 장식을 하고 주문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떡케이크 위에 축하 문구나 짧은 글을 써 넣어주기도 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케이크가 되어 좋더라고요. 떡케이크 뿐아니라 북한식 쉼떡(증편)도 하고 색깔이 예쁜 절편인 꼬리떡도 하고요. 당콩 속을 넣은 송편이나 남새나 김치를 소로 만들어 넣은 송편도 있었고 북한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언감자떡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송편 같은 떡들은 명절에 많이 나가고 떡케이크는 꾸준히 주문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떡 케이크는 평소에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생일이나 잔치처럼 특별한 날에 먹기 때문에 주문을 받고 나서 제작을 하잖아요. 판매량이 일정하지 않아서 떡집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마순희: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판매량은 매달 달라질 수 있지만 주문이 많지 않아도 직원을 쓰지 않고 남편분이 배달도 하고 함께 거들어 주기에 인건비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지출비용이 크지 않습니다. 물론 상가 임대료와 전기세 정도의 지출비는 있습니다. 그래서 지현 씨는 새로운 방도를 냈다고 하는데요. 주문받을 떡을 만들고 나면 어떤 경우엔 오전 10시에 일이 끝나기도 하고 때론 그보다 더 일찍 마치는 경우도 있어서 가게를 그냥 놀리게 되기에 점심 장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농마국수를 직접 삶아서 냉면을 하거든요. 지현 씨를 만나러 갔을 때 저희들도 냉면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는데요. 식사를 하고 나가시는 손님들도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주변에서 일하시는 분들 같아 보이는 몇몇 분들은 고정 단골이라고 합니다. 지현 씨는 떡집 수입에 식당 수입까지 그 정도면 먹고 살 정도는 된다고 자신 있게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김인선: 네. 떡 수입에 식당 수입까지 수입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 고객층이 같은 탈북민이고, 떡도 음식도 북한식이니까 맛에 대한 염려는 없을 것 같은데요. 고향 맛에 금세 단골손님이 되겠어요.

마순희: 그럼요. 저 같은 경우에도 지현 씨가 만든 떡 맛을 보고 1년에 4-5번 정도는 생일케이크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친구들 생일이거나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으면 그때마다 주문하거든요. 한국에서는 생일이면 케이크를 하는데, 우리 탈북민들은 초콜렛이나 케이크 주변을 장식하는 하얀 크림이 입맛이 안 맞거든요. 접해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먹으면 속이 느끼하고 거부감이 있어서 안 먹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현 씨가 떡으로 케이크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니까 탈북민들이 다 좋아해요.

떡으로 만든 케이크는 밀가루로 만든 케이크보다 비싸긴 해요. 그래도 맛도, 정성도 가득 담겨 있는 게 느껴져서 받는 사람마다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지인들에게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축하를, 그 정도는 해줘야 될 것 같아서 신경 좀 쓴다고 할까요? 저랑 비슷한 탈북민들이 많기에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탈북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남한 고객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맛보게 됐다고 하더라도 떡 맛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람도 또 단골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김인선: 호기심으로, 또 우연한 기회로 지현 씨가 만든 북한식 떡을 접하면서 남한 고객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떡도 만들어볼까?’ 저라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 같거든요. 지현 씨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마순희: 지현 씨도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현 씨는 남한의 일반적인 떡은 다른 가게에서도 맛볼 수 있기에 자신의 가게에서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북한식 떡을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떡을 만들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 떡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고향의 어머니 손맛을 느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지현 씨인데요. 사실 저도, 한국에 와서 떡이 흔하기는 하지만 북한에 있을 때 먹었던 고향의 맛을 별로 느껴보지는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지현 씨네 집에서 만든 언감자떡을 먹으면서 고향 생각을 바로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겉보기에 색깔이 새까맣지만 맛은 일품이거든요.

김인선: 저는 북한의 속도전 떡을 맛봤는데요. 간단히 만드는 것에 비해 갓 찐 것 같아서 기억에 남더라고요. 선생님은 남한에 와서 북한에 없던 떡 중에 어떤 게 인상 깊으세요?

마순희: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와서 먹은 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구의 보리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십여 년 전에 대구에 갔다가 보리떡을 누가 사줘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거든요. 그때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못 사 왔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경주에 갔다가 그 보리떡을 사서 함께 갔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맛보이고 저도 집에 사왔답니다. 한국생활 10여 년이 지나니까 저도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비싸다고 생각했던 보리떡이 이제는 비싸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청진복떡공방에서 파는 언감자떡이 더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 자주는 못 사먹고 가끔 사먹고 있습니다.

김인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아쉬운 점이 있네요. 한 끼 식사대용으로 혹은 간식으로 떡을 파는 떡 카페도 많은데, 지현 씨네 떡집에선 주문 제작한 떡만 판매하니까 개별적으로는 맛보기가 어렵다는 거요.

마순희: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남한에선 떡 몇 조각씩 포장해서 2~3달러(2천5백원~3천5백원)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현 씨네 청진복떡공방에선 그렇게 판매하지 않고 떡 배달 주문을 하려면 85달러(10만원) 이상이어야 합니다. 지난 8월에도 지현 씨네 떡집에 갔었는데요. 뜨거운 김이 서린 주방에서 얼굴이 발갛게 익어서 열심히 떡을 만드는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날도 몇 십 개의 포장 주문이 들어와서 많이 바쁜 시간이기는 했지만 늘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자랑스럽더라고요. 누가 보건 말건 자신의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지현 씨 같은 많은 성공사례자들이 있어 우리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이 성공신화를 써 가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다시금 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지현 씨 옆에는 항상 믿음직한 동반자, 조력자인 남편이 있었습니다. 지현 씨의 말 한마디, 얼굴표정 하나에서도 무엇을 바라는지를 귀신같이 알아맞히고 손발이 되어 함께 노력하는 남편이 없었다면 오늘의 지현 씨의 모습이 가능했을까 싶더라고요. 남편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힘든 순간도 이겨낼 수 있다는 김지현 씨인데요. 그녀에겐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김인선: 어떤 꿈이요?

마순희: 통일이 되는 그날 고향인 청진에 가서 청진복떡공방을 차리고 고향사람들에게 맛있는 떡을 마음껏 대접하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현 씨는 떡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탈북 독거 어르신들의 생신 때마다 사랑의 생일케이크를 무료로 보내주는 것인데요. 떡케이크를 받은 분들의 행복한 웃음을 보면 하루의 피곤도 다 사라지곤 한다는 김지현 씨입니다.

김인선: 진심과 열정이 녹아있는 지현 씨의 떡은 왠지 다른 떡보다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현 씨의 소박한 꿈이 꼭 이루어져서 언젠가는 청진에 청진복떡공방이 차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지현 씨가 청진에서 남한식 떡을 선보이기를 바라보며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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