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대예술단과 김정은의 출생

김주원· 탈북자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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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번째 부인이자 후계자로 확정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가 1970년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을 당시의 사진을 데일리NK가 입수해 공개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번째 부인이자 후계자로 확정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가 1970년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을 당시의 사진을 데일리NK가 입수해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는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본귀국동포입니다. 오늘시간에는 귀국자인 그가 어떻게 김정일을 만났고 오늘의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이 태어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영희는 11살 때인 1962년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김정은의 외할아버지인 고경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일본군복을 제작하던 히로타(廣田)군복공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던 친일 주구였습니다. 고영희는 1952년 6월 26일에 일본 오사카 이쿠노에 위치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코리아타운 스루하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일본 공문서 외국인등록 원표에 기재된 고영희의 출생 당시 이름은 고희훈(高姬勳)이었습니다.  그는 북한으로 귀국하여 고영자로 개명하였다가 다시 고영희로 고쳤습니다. 1962년 10월 21일에 제99차 북송 귀국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온 고영희 가족이 배치 받은 곳은 함경북도 화성군이었습니다. 고등중학교 시절에 무용소조에 다니던 고영희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인 1971년에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로 배치 받았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가무단을 모체로 하여 더 많은 예술인들을 받아들여 1969년 9월에 만수대예술단이 새로 개편되었습니다. 평양가무단은 1946년에 설립되었던 예술단체였습니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선전선동사업을 맡아보았던 김정일은 만수대예술단을 설립하고 혁명가극들을 창작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만수대예술단은 노래가수, 무용배우, 연극배우 등 약 300여 명의 배우들로 구성된 예술단체이고 평양시 중구역 지하전철역인 승리역 인근에 있는 만수대예술극장을 전용극장으로 사용하였으며 지금은 동평양대극장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만수대예술단이 공연한 가장 유명한 인기종목으로는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 등입니다.

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1971년에 만수대예술단에 입단한 고영희는 무용배우로 활동하였고 자주 현지지도를 나오곤 하였던 김정일의 눈에도 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김정일은 자기보다 5살이나 연상이었던 영화배우 성혜림과 동거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1963년에 제작한 ‘온정령’, 1965년에 제작된 ‘백일홍’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였던 성혜림은 김정일과 만나기 전에 북한 소설 ‘땅’을 쓴 작가 리기영의 맏아들인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였던 리평과 결혼하여 딸 리옥돌을 둔 유부녀였습니다. 김정일은 성혜림을 이혼시켜 자기와 동거를 시작하였지만 김일성은 성혜림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혜림은 심리적 고통으로 고생하다가 정신질환도 걸렸고 아들 김정남만 남기고 치료차 러시아로 갔다가 사망하게 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서기 출신인 김영숙을 공식 부인으로 받아들여 두 딸인 김설송과 김춘송을 보게 되지만 김정일에게는 만수대예술단을 지도하면서 보았던 고영희에게 더 마음이 쏠리었습니다. 김정일은 고영희가 무용 ‘조국의 진달래’, ‘부채춤’, ‘목동과 처녀’의 주역을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고영희보다 배우생활경력도 높고 더 잘 하는 무용배우들이 있었지만 만수대예술단에 입단하여 얼마 안되는 시점에 무용 ‘조국의 진달래’의 주연을 맡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정일은 만수대예술단을 현지지도하면서 동행하는 일꾼들과 예술단 간부들에게 자주 “무용수는 인물이 아름답고 키가 크고 목이 길고 허리가 가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갓 20살 잡힌 고영희는 김정일이 말한 무용배우 기준에 들었고 5살 연상인 누나뻘인 영화배우 성혜림과 동거했던 김정일에게는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고영희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동거녀 성혜림과 공식적인 본처로 인정받고 살았던 김영숙을 제치고 고영희가 김정일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된 데는 그의 일본여성다운 애교와 청신했던 젊음이 중요했으리라고 봅니다. 배우가 아무리 기량이 높아도 예술단 입단 경력에 따라 주역을 맡는 관례를 깬 것이나 일본공연단에 속해 일본에 가서 공연하게 된 것도 김정일의 이성적인 만족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영희는 만수대예술단에서 김정일의 관심과 배려로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1973년 7월부터 9월까지 일본에서 진행된 공연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일본에 가서 무용 ‘조국의 진달래’, ‘목동과 처녀’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일본 공연 이후로 김정일의 만수대예술단 현지지도는 더 잦아졌습니다. 예술단에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공연조, 희극조, 합주조 등 3개의 조가 생겼고 이들은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의 비밀파티들에서 자기들의 기량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비밀파티는 김정일이 자기의 후계권력세습을 위해 항일투사 원로들과 고위간부들을 밤에 불러 함께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고 음악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행사입니다. 고영희가 속한 공연조는 김정일이 참석한 이 비밀파티에서 춤을 추기도 하였고 간부들의 옆에 앉아 술을 따르기도 하였습니다. 1975년 23살이었던 고영희는 그 때부터 김정일의 옆에만 앉아서 술을 붓기도 하고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면서 이야기를 더 자주 주고 받게 되었고 그 다음해인 1976년부터 김정일의 애첩으로 비밀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본처였던 김영숙은 아들을 낳지 못한 일로 김정일의 이성적인 행위를 순종하듯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일성이 아는 것이 두려워 고영희를 전국의 창성초대소, 강동초대소, 원산초대소 등 전국 여러 초대소들에 데리고 다니면서 이성행각을 벌렸습니다. 김정일의 고향이 어딘지 아직도 불투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동거녀로 된 고영희는 25살 나던 1977년부터는 비밀파티에도 나가지 않았고 1981년에는 김정철을, 1984년에는 김정은을 낳았고 1987년에는 딸 김여정을 낳았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에게도 이런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은 원산초대소에 고영희와 김정은 형제들을 숨기고 동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이 커가자 그들을 스위스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은 살아있는 동안 자기에게 이런 손자, 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고 결국 함께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습니다.

한창 꽃필 나이인 어린 나이에 유부남이었던 10살 연상인 김정일에게 애첩으로 들어가서 두 아들과 딸을 낳으며 은둔생활을 해온 고영희는 외부와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았습니다. 애들만 스위스에 유학을 보내고 원산초대소에 숨어 고독하게 살면서 드문히 내려오는 김정일과 동거하던 고영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쾌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자기와 만날 당시에 김정일이 본처가 있었던 것을 아는 그로서는 김정일이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편안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암도 정신적인 고민이 쌓이면 더 잘 생깁니다. 고영희는 유방암에 걸려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에서 의료진들이 북한에 와서 치료를 해주었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 나가서 치료를 받기도 하였지만 끝내 병이 낳을 수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죽고 경제난도 겹치면서 북한체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았던 김정일은 점점 더 무질서한 섭생과 이성행각을 동반한 비밀파티로 건강이 나빠졌고 고영희의 아버지이자 김정은의 외할아버지인 고경택은 1999년에 사망하면서 그 다음해에는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이 북한에서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결국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출신의 20대 처녀였던 고영희는 유부남이었던 김정일을 만나 숨어사는 마음고생에 병까지 겹쳐 51살 나던 2004년 6월 13일 새벽에 외국에서 사망하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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