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미국의 대북지원

김주원∙ 탈북자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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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아과 병원에서 한 의사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의 팔뚝 굵기를 측정하고 있다. 이 사진은 '머시코' 등 미국의 5개 구호 단체 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북한 소아과 병원에서 한 의사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의 팔뚝 굵기를 측정하고 있다. 이 사진은 '머시코' 등 미국의 5개 구호 단체 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 동포 여러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1995년에 북한당국이 김정일의 지시로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면서 클린턴 정부시기에 처음으로 대북지원을 시작하여 2000년대에 부시 정부시기까지 미국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대북지원에 대해 지난시간들에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2009년 1월에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16년까지 집권했던 오바마 정부시기의 대북원조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48세의 나이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의 아프리카 흑인이었고 어머니는 유럽계 백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버드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정치에 입문하여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상원의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어 2008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2년 11월에 재선에 성공하여 2016년까지 대통령을 연임하였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시절에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을 전제조건 없이 만나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풀겠다고 밝히자 북한당국은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당선되기를 바랬습니다.

북한당국은 2009년 5월 25일 풍계리에서 2차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2009년 12월 8일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스티븐 대북 특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사흘간 평양에 머물면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미 관계가 정상화 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였고 2012년에는 북미 양국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2·29 합의를 이루어내기도 했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지고 43일 만인 2012년 4월 13일에 북한당국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강행하면서 2·29 합의는 파기되었고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에 들어갔습니다.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경제발전과 체제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도였으나 지속된 도발로 실질적인 협상을 위한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결국 오바마 정부시기인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사이의 대북지원액은 클린턴 정부시기와 부시 정부시기를 포함한 1995년부터 2016년 총액 중 3% 밖에 안되는 가장 적은 액수인 5천 100만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북한의 도발적인 핵과 미사일발사실험은 오히려 대북지원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클린턴 정부시기에는 정부가 나서서 직접 북한에 지원했고 부시 정부시기에는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을 위주로 하였다면 오바마 정부시기에는 비정부 민간단체인 NGO를 통해 주로 대북지원액을 할당하였습니다. NGO는 영어로 비정부 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비정부 조직은 정부나 그 어떤 정치조직 등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개인이나 민간단체들에 의해 조직되고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북한에서는 민간단체를 개인들이 설립하여 활동할 수 없지만 미국과 러시아 등 전 세계의 대다수 나라들은 개인들이 단체를 조직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가 정책을 잘못하면 비판하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회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현재 전 세계 비정부기구의 수는 천만 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미국은 약 150만 개의 국내외 비정부기구인 NGO가 운영되고 있으며 러시아에는 약 28만 개, 인도는 약 200만 개가 있으며 한국에도 1만 3천여 개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시기는 이런 민간단체인 NGO를 통해 북한에 대한 대북지원을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정부가 대북지원을 했던 단체는 27개였습니다. 이 단체 중에 ‘머시코’라는 명칭을 가진 단체는 미국에 있는 민간단체로, 15만여 명의 함경북도 두만강 지역 주민들의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머시코는 2012년도와 2013년도 미국 정부에서 제공한 약 326만 달러로 식량을 사서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보냈습니다.

북한지원을 위해 미국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은 민간단체들로는 국립 민주주의 단체(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국제민간기업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Private Enterprise), 민주 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인터 미디어(Intermedia) 등입니다. 이 단체들은 북한의 인권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입니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는 북한 인권개선과 중국 내 위기 탈북민 구출, 북한의 종교탄압 방지와 종교자유화 등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 내 민간단체들도 지원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아 활동한 단체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며 이 단체가 오바마 정부시기에 받은 총 지원액은 436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리고 약 332만 달러를 지원받았던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부터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수집하고 조사한 내용을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에 고발, 제소해오던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활동으로 전 세계는 북한에서 공개처형을 비롯한 현대판 노예처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설립되게 되었으며 유엔에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직책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오바마 정부시기의 대북지원은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대대적으로 강행하면서 지난 정권에서 했던 무조건적인 대북지원보다, 북한 정부보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대북지원으로 바뀌었습니다. 호전적인 김정은과 북한 군부 동향 등 전쟁을 방지하고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을 연구하는 대학교와 연구소들에도 미국정부는 자금을 제공하였습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오바마정부가 지원한 연구기관과 기업으로는 경남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내 북한관련 연구기관, 데일리 엔케이(Daily NK), 엔케이 커뮤니케이션(NK communication), 극동문제연구소, 국방포럼재단, 전쟁과 평화 보도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전환기정의 워킹그룹, 북한개혁연구소, 그리고 탈북지식인 단체인 NK지식인연대 등입니다.

미국정부의 북한에 대한 실태조사와 북한주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대북방송지원이 진행되면서 많은 대북라디오들이 북한으로 송출되어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었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던 북한주민들이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 소리방송(VOA)방송, 극동방송, 한민족방송 등 여러 대북방송을 듣는 과정에 북한 김씨일가의 반인륜성과 호전성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번영과 외부세계의 민주주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부시기 대북지원액 약 7억 8,200만 달러, 부시정부시기 10억 300만 달러에 비해 오바마 정부시기에 5,100만 달러로 가장 적었지만 그래도 이 지원액은 북한에게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김정은이 당시 핵과 미사일 발사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요구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대북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오직 김정은과 북한 특권층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만 필요한 체제유지용입니다. 결국 현대판 김씨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한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의 대북지원이 감소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현재 트럼프 정부의 대북지원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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