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루트 현장을 가다]➂ “하루라도 빨리 한국땅 밟고 싶어”

동남아-노정민 nohj@rfa.org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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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륜 오토바이에 나눠 탄 탈북자들이 경찰서로 향하고 있다.
삼륜 오토바이에 나눠 탄 탈북자들이 경찰서로 향하고 있다.
RFA PHOTO/노정민

앵커: 제3국에 밀입국한 탈북자들은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다음날 서둘러 경찰서행을 택했습니다. 하루라도 일찍 경찰서에 자수하면 그만큼 한국 땅에 빨리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경찰서와 이민국 수용소 등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탈북자들은 불안함 없이 새로운 길을 떠났는데요. 이곳까지 6천km를 달려와 다시 대한민국 땅까지 4천 km, 총 1만 km 여정의 마지막 순간인 셈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탈북자 13명의 목숨을 건 여정과 이들을 돕기 위한 한국 인권단체의 구출 작전을 현지 밀착 취재로 생생하게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제3국에서 경찰서로 향하기까지 모습을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찰서로 향하는 날

제3국에서 첫날밤을 보낸 13명 탈북자에게 특별한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밤 국경을 넘고 긴장이 풀린 탓에 늦잠을 잘 만도 한데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밥도 든든히 먹었습니다.

오늘은 밀입국한 것을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가는 날. 또 다른 여정의 시작입니다.

하루 더 머무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권했지만, 모든 탈북자는 경찰서로 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하루라도 일찍 자수해야 그만큼 한국에 빨리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두 달 넘게 마음을 졸이며 불안하고 답답한 생활을 해 온 것도 곧바로 자수를 결심한 이유가 됐습니다.

20대 탈북 여성 박수영 씨(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는 경찰서로 향하기 전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선택을 믿기 때문에 괜찮다고 당당하게 답했습니다.

[박수영 씨]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국까지 어떻게 가게 될지 잘 모르잖아요. 막연하고 두렵지 않아요?)전 불안함이 없어요.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에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무섭다거나 불안함은 없어요. 앞으로 남은 기간 잘 지내다가 한국에 도착해서 열심히 살 겁니다.

[현장음: 마켓] 팀장들은 자기 짐 챙기세요.

탈북자들은 인근에 있는 대형 상점에 들렀습니다. 앞으로 한 두 달 동안 경찰서와 이민국 수용소에서 지낼 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입니다.

세탁이 여의치 않을 것을 고려해 여벌의 옷과 생필품 등이 주요 구매 품목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비록 이민국 수용소에서 입을 옷이지만, 색상과 모양 등을 보고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서로 향하기 전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탈북자들.
경찰서로 향하기 전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탈북자들. /RFA Photo-노정민

짧은 여유…새로운 다짐

간단히 쇼핑을 마친 탈북자들은 인근 카페에도 들렀습니다.

시원한 커피와 생과일주스를 주문하고 탁자를 사이에 둔 채 삼삼오오 모인 탈북자들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북한 물가는 얼마나 되는지, 요즘 북한 주민은 어떻게 사는지, 국경 지방의 상황은 어떤지 등도 묻고 답하며 북한 실상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현장음] (요즘 돼지고기 한 kg에 얼마나 합니까? 요즘은 다 중국 돈으로 하니까.) 뱃속의 아이도 비(중국 돈)하는데… 미국 돈도 씁니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인지.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도 조금씩 털어놓습니다.

50대 나이로 탈북 길에 나선 이춘화(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는 ‘더 일찍 이 길을 나섰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라며 아쉬워합니다.

[이춘화] 이 기회를 내가 어떻게 이용하느냐? (그렇지. 그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거지) 내가 30년 전에 왔다면 어떻게 됐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단 말입니다. 그때는 기회가 많았는데, 난 집에서 잘 살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깨지(깨닫지) 못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깼단(깨달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늦었단 말입니다.

의사가 되고 싶은 20대 여성 김진혜(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도 북한에서 의대를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지인이 그동안 공부한 것을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삼지연 건설 공사 현장에 배치되는 북한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새로운 기회를 잘 살려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김진혜] 이제부터 방향을 잘 잡아야…

[지성호] 이제 시작점에 딱 섰으니까,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남한 사회에서 딱 갈라집니다. 그래도 이렇게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춘화 씨는 요즘 북한 사람의 시야가 넓어졌고, ‘세계로 뻗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침 옆에 앉아 있던 탈북 여성 김지영(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도 맞장구를 치며 북한 주민에게도 익숙한 속담 하나를 알려줍니다.

[김지영]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단 말입니다. ‘앉아있는 영웅보다 나다니는 머저리가 낫다’는 말이 있잖아요. (앉아있는 영웅보다 나다니는 머저리가 낫다?)

[이춘화] 그러니까 세상을 둘러보라. 둘러봐야 안다. (그럼 요즘 북한 주민 사이에서 그런 의식이 다 있다는 말이겠죠?) 다 있지요. 돈이 많은 사람도 집을 팔아서 가겠다는 거죠. 다만, 줄이 없어서 못 가는 거지. 이제는 ‘나는 이렇게 살지만, 우리 후대를 위해서 날자’ 이거란 말입니다. 내 후대를 위해서…

탈북자들이 현지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탈북자들이 현지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RFA Photo-노정민

자신이 살아 온 북한의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농담과 큰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워보지만, 무언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럴수록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난 이 여정이 헛되지 않도록 한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더 굳건해집니다.


눈물의 이별…새로운 여정의 시작

[현장음] 밤에 배고플 수 있어 많이 먹어둬. 내일 아침밥이 몇 시에 있을지 몰라.

13명의 탈북자와 함께한 마지막 저녁 식사. 이 식사를 마치면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밀입국을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할 예정입니다.

자수를 앞둔 마지막 만찬이지만, 분위기는 매우 밝았습니다. 이들 앞에 펼쳐질 새로운 여정과 행복을 응원하며 서로 물이 든 잔을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나이는 12살이지만, 유난히 키가 작은 김철수(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군도 식사 시간 내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배도 든든히 채웠습니다.

[현장음: 밤거리 음악]

식사를 마친 탈북자들은 각자의 짐을 챙겼습니다. 서둘러 삼륜 오토바이 두 대에 나눠 탄 탈북자들. 운전수에게 경찰서로 데려다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나우(NAUH) 관계자와 보낸 시간은 단 하루였지만, 흠뻑 정이 들어버렸고 어느새 언니, 오빠, 누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든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며 힘들었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 고마웠고, 앞으로 가야 할 경찰서행에 대해 애써 감춰왔던 불안함 때문인지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현장음] 우리 꼭 만나요.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견디세요.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게.) 여기까지 다 왔으니까. 왜 울어요. 나도 겨우 참고 있는데. 우리 다시 만나요. 괜찮아, 다 할 수 있어. (언니 다시 만나요.) 응, 앓지 말고…

[박주영] 아이고야. 빨리 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고요. 감사합니다.

꼭 안아주기도 하고, 손을 굳게 잡아주기도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눈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른 끝에 탈북자들을 태운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현장음] 이쪽으로 가면 경찰서 맞아요.

탈북자들이 경찰서로 향하기 전 나우 관계자들과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경찰서로 향하기 전 나우 관계자들과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RFA Photo-노정민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간 탈북자들은 그렇게 또 다른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에서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던 나우 관계자들의 마음도 먹먹해지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지성호] 여기까지 다 왔는데요. 며칠만 참으면 새로운 삶, 자유를 찾을 거라서 기뻐요. 이들이 언제 그런 여유를 가질 시간도 없었고, 정을 느낄 시간도 없었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으로 버텨왔는데, 이곳에서 따뜻함도 만나고, 자꾸 손을 놓지 않아서 나도 못 놓겠고…

북한을 떠나 4개의 국경을 넘어 온 약 6천km의 탈북 여정. 제3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기쁨과 안도의 하루를 보내자마자 대한민국이라는 최종 목적지까지 약 4천km의 새로운 발걸음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장에서 탈북자들을 만난 나우의 김성애 사무국장은 이들이 다시 경찰서로 가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대했습니다.

[김성애 사무국장] 저렇게 죄가 없는 사람들이 힘들게 이곳에 넘어와 왜 다시 경찰서로 가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눈물을 참기가 쉽지 않네요. 다시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것만 바라면서 기다리겠습니다. 빨리 다시 만나야죠.

나우의 지성호 대표도 앞으로 탈북자 구출에 더 매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지성호 대표] 자유를 찾기 위해 6천km를 이동해 이곳까지 온 사람이 있고, 우리가 4천km를 돌아와 만남을 가졌는데요. 우리가 더욱 초심을 잊지 말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나아가 북한 주민에게도 자유가 깃들어 눈물의 헤어짐이 없는, 행복한 자유의 세상에서 함께 살기를 기원하면서 더 열심히 일해 나가겠습니다.

탈북자들이 경찰서로 향하고 나우 관계자들과 자유아시아방송 기자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한 두 달 뒤면 제3국에서 만난 탈북자 13명도 그토록 바라던 한국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들이 상공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땅과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1만 km 여정의 끝자락에서 마음에 끌어오르는 감정과 다짐은 무엇일까.

앞으로 13명의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유의 땅에서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탈북 과정의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간절히 염원했던 꿈과 희망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응원해봅니다.

[박유성 (2007년 입국)] 정말 잘 오셨습니다. 고생 많으셨고요. 지금까지 있었던 마음의 불안함, 걱정 등은 내려놓고, 당분간 대한민국이 여러분을 돌봐주기 때문에 몸만 맡기시면 좋은 삶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성호] 어둠의 북한 땅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자유의 땅이고, 기회의 땅으로서 자신의 노력에 따라 대가가 주어지는 땅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곳입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여러분처럼 자유를 찾아올 후배들을 위해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서 북한 주민과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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