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노동자 해외파견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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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설 현장의 구호 게시판 앞에 서 있는 주민. (2011년 8월)
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설 현장의 구호 게시판 앞에 서 있는 주민. (2011년 8월)
/사진제공: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자력갱생을 목청껏 외치고 있지만 북한 역시 외화획득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북한에서 외화벌이 수단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노동자를 해외에 파견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문성희 박사님, 북한 현지에서 노동자 해외 파견에 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2011년 북한을 장기 방문했을 때 사회과학원 교수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당시 북한 경제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 수집과 강의를 들었는데 ‘대외봉사거래’라는, 그 때까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들었어요. ‘대외봉사거래’란 ‘나라들 사이에서 사회적 노동을 호상 교환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어요. 그러면서 ‘대외 경제관계 확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어요. 한 마디로 다른 나라에 가서 봉사를 한다는 것인데, 특히 건설분야에 관해서는 콕 짚어서 ‘대외건설봉사’라는 말을 따로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 해외 건설 현장에 노동자들을 보내는 ‘대외건설봉사’가 아무래도 북한의 주력 노동자 파견 방식이었던 듯하군요.

문성희: 네, ‘공화국의 대외건설봉사 거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공화국이 쌓은 경험도 아주 풍부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여기서 공화국이란 물론 북한을 뜻하는데 그 역사가 꽤 오래돼 1977년에 리비아에 처음으로 북한 노동자를 건설 현장에 파견하면서 시작됐답니다.

<기자> 1977년 이라면 한국 건설업체가 리비아에서 공사를 수주하기 시작한 시점과 거의 비슷한 듯한데 꽤 오래 전에 북한 노동자들이 리비아 건설 현장으로 파견됐군요.

문성희: 네, ‘1977년 5월 6일, 김일성 주석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를 첫 대외건설봉사거래 대상으로 찍어주셨다’는 설명이었어요. 바로 다음날 300명 규모의 ‘5월 6일 건설사업소’라는 것이 세워졌는데 이게 북한에서 노동자파견을 위한 첫 사업소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노동자 파견이 확대되면서 그 해 10월 10일, 5개월도 채 되지 않는 시점에 건설사업소 종업원 수가 2천 명으로 늘어났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여러가지 연구해보니까 다른 설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1977년이 시점인지는 정확지는 않는데 당시 북한 사회과학원 교수는 그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북한이 주로 어느 나라와 대외봉사거래, 그러니까 노동자파견을 하고 있던가요?

문성희: 2011년 당시 북한이 노동자를 파견했던 나라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아랍추장국), 이라크, 카타르, 예멘, 오만, 그리고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앙골라, 적도기니, 나미비아, 세네갈, 유럽의 러시아, 폴란드 등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주로 극동(원동) 지역에 파견돼 있었어요. 이제 그 때로부터 8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이 나라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가 없지만….

<기자> 노동자파견이 이처럼 북한에서 활발해진 건 아무래도 외화를 벌어들이기가 상대적으로 손쉬웠기 때문인 듯한데요.

문성희: 이것도 북한 연구자(사회과학원 교수)가 이야기해준 것인데 하나는 ‘뭉태기외화’를 벌 수 있다는 것이애요. 그러니까 거액의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이 파견되면 도로, 철도, 관개수리 구조물, 공장, 공공물, 살림집 등 아주 큰 대상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특징이 있었어요. 그런 공사에 파견되면 큰 규모의 외화를 벌 수 있다는 말이지요.

북한에서는 소풍을 갈 때 흔히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차려놓고 나눠 먹곤 한다.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로와 석쇠도 준비돼 있었다. (2011년 8월)
북한에서는 소풍을 갈 때 흔히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차려놓고 나눠 먹곤 한다.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로와 석쇠도 준비돼 있었다. (2011년 8월) /사진제공: 문성희

<기자> 당시 북한 노동자 한 사람당 임금이 어느 정도 됐는지 궁금하군요.

문성희: 그건 저도 궁금해서 북한에 있을 때 물어봤던데, 2011년 당시 노임은 잘 모른다고 했고 다만 70년대 당시에 노동자파견이 막 시작될 때 한 사람이 1년에 5천-1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그것보다 더 많은 외화를 벌 수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 나가서 건설을 하게 되면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데, 그것을 본인들이 가져오게 해서 본인들에게 주는 것도 있고 국가에 납부하는 것도 있다는 설명이었어요.

<기자> 그런데 북한 당국이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보수를 착취한다는 얘기가 있고 실제 취재를 통해서 일부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는데, 어떻던가요?

문성희: 실지 현지에서 제가 조사를 한 것이 아니고 파견 노동자를 만난 적도 없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런 주장이 있다는 건 저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들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동자들이 번 돈을 모두 국가가 수탈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국가가 가져가는 몫도 있고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몫도 응당 있겠지요. 왜냐하면 해외에 나가서 번 돈으로 북한에서 집을 산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제가 직접 평양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엄청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해외노동자로 나가고 싶어서 모집 공고가 나면 줄 서서 기다린다는 그런 얘기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기자> 노동자 해외 파견이 외화벌이 이외에도 북한에 꽤 이로운 점이 있다면서요?

문성희: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북한에서 들었는데, ‘대외건설을 잘 하게 되면 북한에 없는 석유, 코크스, 고무 등과 같은 원료, 자재들을 잘 해결할수 있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북한이 주로 노동자를 파견하는 나라가 석유생산국, 자원보유국이어서 이런 나라들에서 건설을 하게 되면 북한에 없는 원료, 자재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화폐 형태로 건설대금을 지불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북한에서 원료, 연료 등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대체해서 줄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러니까 북한이 부족한 원자재와 연료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도 노동자파견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기자> 현재 북한의 노동자 해외 파견 상황은 어떤가요?

문성희: 네 북한이 현재 노동자를 파견하는 나라가 10여 개 국가부터 40개국까지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2016년 미국 국무부가 의회에 재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폴란드, 몰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23개국 정도가 됩니다. 이건 아까 말한 북한 연구자의 말과도 공통된 숫자입니다. 실지 파견된 노동자도 5만 명부터 11만-12만 명까지 여러 설이 있고 북한이 버는 외화도 1억 5천 만 달러부터 23억 달러까지 광범한 숫자가 보고돼 있습니다. 다만 북한이 실지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숫자가 정확한 지는 알 수 없지요.

<기자> 그런데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로 북한의 노동자 파견은 사실상 중단될 상황에 처한 듯합니다.

문성희: 네 유엔 안보리가 2016년 11월 30일에 발표한 제재결의 2321호에서 처음으로 노동자파견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결의에는 ‘북한의 노동자를 체류시키고 있는 나라에 대해 북한 노동자 임금이 북한 정권의 금지된 계획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는 기술이 처음 등장해요. 이게 뭐냐 하면 노동자들이 벌어온 외화가 핵,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만 이때는 제재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2017년 8월 5일 제재결의 2371호에서 북한 노동자 파견에 제한을 걸었던 것이 처음입니다. 그 다음 9월 11일 제재결의 2375호에서는 북한 노동자 파견에는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기술이 보태졌습니다. 그리고 이 해 12월 22일 제재결의 2397호에서 해외 노동자를 24개월이내에 본국으로 송환시켜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말에는 해외에 파견된 모든 노동자들을 북한에 송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자> 북한으로선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큰 타격을 받게 되는 셈이군요.

문성희: 그렇지요. 그러니까 지난 2월에 진행된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이 민생에 관한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봅니다. 리용호 외무상이 말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의 제제결의’에는 노동자 파견도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북한의 노동자 해외파견이 재개되기 위해선 핵, 미사일 개발이 중단돼야 한다는 말이지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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