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한 농사 ‘우려’가 ‘현실’로

워싱턴-노정민, 한덕인 nohj@rfa.org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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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원화 협동농장 농장원들이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평안남도 원화 협동농장 농장원들이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앵커: 모내기 철을 맞은 북한 농촌에서 심각한 비료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협동농장에서는 벌써 ‘올해 농사를 망쳤다’는 자조적인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종자·비료 등 농자재 부족으로 농사 준비가 미흡해 올해 작황이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올 초부터 제기된 바 있는데요, 북한 전문가들은 당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창 모내기 철을 맞은 북한 농촌 지역의 실상을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작황 나쁘다면, 요즘 상황이 주요 원인 ”

일본 ‘아시아프레스’가 최근 (5월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힌 북한 협동농장의 상황은 두 달 전과 비교해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아시아프레스’의 취재협조자가 직접 협동농장을 둘러본 뒤 전한 상황은 비료를 비롯한 영농 자재 부족이 심각해 올해 작황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질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올해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자체적인 거름 생산이 충분치 않았고, 북한 내부에서 생산한 비료의 양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가 그나마 생산된 비료 역시 황해도 지방에 집중되면서 지역 간 편차도 큰 것으로 파악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가장 비료가 필요한 시기이지만,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협동 농장 간부들마저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털어놓는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첫째는 비료 부족이 심각하고, 비료도 황해도 쪽에 집중돼서 다른 지역은 정말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영농자재가 없어서 아마 (농사가) 안 될 거라는 것이 대체적인 이야기입니다. 농장에 사람을 보냈는데, “작년에도 정말 안 좋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쁘다”, “올해 농사는 확실히 망할 것”이라고 농장 간부들도 이야기한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각한 비료 부족으로 올해 농사 준비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던 권태진 한국 GS 인스티튜트 북한 동북아연구원장도 두달 전 예상한 것과 지금이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권 원장은 요즘 시기가 올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준비 상황이 순조롭지 못한 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권태진 원장] 지금 협동농장마다 비료 부족을 겪는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모내기 철을 맞아) 지금 5월에 밑거름으로 비료를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올가을에 어떤 형태로든 농사 작황이 안 좋다면, 지금 시점의 비료 부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도 최근(5월 1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비료 부족 문제는 올가을 작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심각한 사안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비료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고 중국에서 들여오는 비료의 양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국이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아 북한이 상업적으로 수입도 해야 하는데, ‘코로나 19’에 따른 국경봉쇄와 외화 부족 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권태진 원장] 중국에서 얼마나 비료가 들어갔는지 저도 확인을 못 했습니다만, 작년과 재작년에는 무상 지원된 비료의 규모가 컸죠. 특히 재작년에는 많이 지원했고, 작년에는 규모가 줄긴 했지만, 꽤 많은 양을 지원했는데 만약 올해 들어갔다면 최근에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무상 지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내산 비료의 상황도 열악합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농장에서 직접 가지러 가야 하는데, 운송 수단이 여의치 않다 보니 공급이 쉽지 않습니다. 개인 농사를 짓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장마당에서 비료를 팔기도 하는데, 가격은 일반 쌀값과 비슷합니다.

또 무기질 비료가 없으면 유기질 비료라도 생산해야 하는데, 지난해 발병한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돼지 수가 많이 줄면서 돼지 분뇨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권태진 원장] 무기질 비료가 없으면 유기질 비료라도 생산해야 할 텐데, 돼지 사육두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돼지 분뇨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유기질 비료라도 만들 텐데요. 작년에 발생했던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올해 개인에게는 소득원을 줄이는 일이 됐고, 국가적으로는 유기질 비료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죠.

브라운 교수는 과거 1950~60년 대만 해도 북한이 화학 비료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인분 비료를 필요로 하는 역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 또한 관련 산업을 망친 결과라고 꼬집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교수] 왜 북한이 인분 비료를 필요로 하느냐, 그 자체가 의문입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이 그 산업 자체를 망쳤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충분한 화학비료를 생산하기 위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농업 부문의 자력갱생, 거의 바닥 보여”

이처럼 올해 농사 작황이 매우 나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나 주민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북한 당국이 모내기 철을 맞아 농업 생산량 확대 의지를 강조하고 식량 문제의 해결이 당의 중요한 정치적 사업이자, 대북제재를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과 전문가들은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답답한 현실만을 꼬집을 뿐입니다.

[이시마루 대표] 비료를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잖아요. 농장에서 못 만드니까. 거름 생산도 올해는 안 됐습니다. 사람들 인분으로 ‘코로나 19’를 옮길 수 있다고 해서 대부분 도시에서는 안 했습니다. 농촌에서만 했는데, 그것만으로 너무 모자라고요. 그래서 인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여러 물자가 결정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아마 (농사가) 안 될 거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보고였습니다.

[권태진 원장] 지금은 별 대책이 없습니다. 항상 북한에서는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는데, 자력으로 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든요. 노동력은 열심히 하라고 하면 되지만, 그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자력갱생이 거의 바닥에 와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죠.

브라운 교수는 북한의 식량 부족 현상이 20년 동안 계속돼 왔기 때문에 특별히 ‘코로나 19’나 ‘날씨’ 등의 핑계를 대기보다 북한의 농업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교수] 북한 인구의 1/3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이는 북한 농부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똑똑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사회화된 농업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같은 체제를 바꾸지 않을 것이란 게 문제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최근(5월 18일) 북한이 ‘코로나 19’로 새로운 식량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으며, 한국 통일부는 ‘코로나 19’에 따른 곡물 수입 감소로 올해 북한에서 86만 톤의 곡물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한 때에 북한 당국이 계속 자력갱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미국, 한국 등이 내민 손길에 응답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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