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지방경제 실상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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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강도의 한 아파트. 북한의 지방 아파트에서는 돼지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8월)
북한 자강도의 한 아파트. 북한의 지방 아파트에서는 돼지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8월)
/문성희 박사 제공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문 박사님, 북한을 오가시면서 평양뿐 아니라 지방도 자주 오가셨을 텐데요, 지방에서 직접 본 북한 경제의 실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문성희: 실태를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지방 경제에 대해 취재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목격한 범위내에서 말씀 드린다면 2010년대 초반 당시 지방에서는 외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것도 큰 돈이 아니라 잔 돈이 모자란 것이에요. 평양과 함흥 사이 열차를 탈 때는 달러로 지불했는데 돌아올 때 100달러밖에 없었어요. 당시 왕복이 70달러였기 때문에 돌아올 때 차비는 35달러. 100달러면 65달러 거스름 돈을 주면 좋은데 달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해서 안내원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35달러를 구한 그런 경험이 있어요. 양강도에서는 중국 위안화밖에 쓸 수 없었는데 그것도 잔돈 밖에 못 쓴다는 것이었어요.

<기자> 지방에서 시장에도 가보셨나요?

문성희: 지방에서는 시장에는 못 갔어요.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도 있고 평양에서 따라온 안내원한테 부탁을 해도 시장에 데려가 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만 주변 산책을 했을 때 재미난 것을 목격했어요. 집 앞에 여행용 트렁크 같은 큰 가방을 펼쳐놓고 거기에 사탕이나 담배, 껌 같은 것을 전시해서 파는 것이에요. 어느 측면에서 보면 일본이나 한국의 편의점 같은 것이지요. 가만히 보니까 가방 시장은 여러 집 앞에 있었어요. 현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시장까지 못 가는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요. 말 그대로 자유상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자> 이런 형태의 시장은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었나요?

문성희: 다른 지방에서는 길거리에 천을 펼쳐서 그 위에 상품을 전시해놓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지방에 가면 평양처럼 각 구역마다 시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런 길거리 상점이나 가방 상점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고 봐요. 시장 인근에는 허가를 받지 않고 길거리에 상품을 전시해서 파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계란을 사는 할머니도 있어요.

평양 류경호텔 전경. (2010년8월)
평양 류경호텔 전경. (2010년8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에요?

문성희: 네, 싼 가격으로 사서 좀 비싸게 파는 것이겠지요. 모두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쓰고 있다고 당시 그런 걸 목격했을 때는 느꼈어요.

<기자> 지방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는 열차 창구에서 목격한 시장경제화를 엿보이게 하는 움직임에 대해 말씀해주신 기억이 나는데요.

문성희: 네, 그것도 하나의 지방경제의 실태라고 봅니다. 당시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열차가 멈추면 선로 위에 시장이 생기는 것이지요. 지방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구나, 당시는 그렇게 느꼈어요, 양치나 세수를 하기 위한 물을 파는 어린 아이까지 있었으니까요. 모든 걸 장사로 이용하는, 뭐라할까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가자는 그런 북한 사람들의 굳센 의지라 할까 그런 것에 관심 했고 경의도 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자> 그렇군요. 일반 북한 주민들은 생활력이 강한가요?

문성희: 네, 제가 북한에 갈 때마다 관심한 것이 바로 조건이 안 좋아도 창의창발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인내심이에요. 그런 북한 사람들이기에 제재를 받으면서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기자> 지방에도 식당이 있나요?

문성희: 물론 있습니다. 평양처럼 많은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이탈리아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이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가정요리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흥이나 원산에는 비교적 큰 가게도 있었어요. 원산에는 재일동포 귀국자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던데 여기는 정말 인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불고기가 전문이고 송도원에 있었으니까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을 재료로 한 탕이나 회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재일동포들 속에서 소문이 나서 과거에 만경봉호가 니가타와 원산을 왔다갔다할 때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동포들이 반드시 여기 가게에 들려서 식사를 했지요. 2010년대에는 원산에 불고기나 조선요리를 대접하는 식당들이 몇 군데 생기고 있었어요.

<기자> 함흥이나 원산 같은 큰 도시가 아니라 좀 더 작은 시골에도 가게가 있나요?

문성희: 네 있습니다. 제가 양강도의 삼지연에서 들어간 가게는 한국의 사극에 등장하는 조선왕조시기의 술집과 같은 분위기였어요. 사슴과 멧돼지 똥집으로 만든 육회와 자장면 토종닭의 삶은 달갈 등을 먹었는데 정말 상상이상으로 맛이 있었어요. 식탁이 세 개 정도 있는 작은 방 옆에 조리장이 있고 거기서 3명의 여성이 요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소주는 가져갔기에 순수 식대만으로 1인당 약 6만원. 일반사무원들의 노임이 3천원이었기때문에 20개월 분이지요. 물론 3천원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싸지 않는 가격인데도 현지 사람들이 제법 찾아와서 만석이었고 밖에는 행렬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기자> 사슴이나 멧돼지의 회 같은 것은 먹기가 힘든데요?

문성희: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걸 한 번 먹어보자 하는 편이에요. 조선신보 특파원 시절에도 지방에 내려가면 취재 대상자들이 식사를 준비해주고 있었고 반드시 술도 붙어있었습니다. 술은 소주가 보통인데 좀 독특한 향기가 나고 맛도 알콜 도수가 높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마시기가 힘들었지만 현지 사람들이 열심히 준비해주신 것이라 고맙게 먹었습니다.

<기자> 지방에는 양강도에서 식사를 한 장소와 같은 가게가 기본인가요?

문성희: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지방의 가게는 대체로 이런 분위기라고 했어요. 양강도에서 함경남도 함흥으로 향하는 도중에 들른 식당도 양강도의 식당과 같은 분위기였어요. 방은 약간 작고 조리장 겸 매점에는 주스와 술 등도 팔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경영자는 3명의 여성. 버섯국과 밥, 버섯볶음에 5천원 정도. 소박하지만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5천원 정도니까 양강도의 식당과는 비교 못할 정도로 가격은 싼 것이지요. 그러니까 가격이 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도 가격은 가는 곳마다 가게 마다 다르게 설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정가격이 아니라 시장가격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기자> 매점에서 파는 주스나 술 같은 것은 국산인가요?

문성희: 이제 옛날 이야기라 기억이 안 나는데 주스는 중국에서 만든 것이였다고 기억합니다. 술은 국산이었고. 술안주나 과자 같은 것도 팔고 있었던데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자> 지방을 찍은 사진을 보니까 거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던데요.

문성희: 네 저도 사과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했어요. 주로 도로 주변에 있어서 운전기사들, 그리고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탈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에서는 간부나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니까 당연히 과일도 사주는 것이 아닌가 해서 도로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지금 가게 이야기를 들으면 지방에서도 결국은 개인이 장사를 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문성희: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게를 하고 있는 것도 도나 군, 리 등의 지시하에 하고 있을지 모르지요. 행정이 경영권을 가지고 종업원들을 고용해서 장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양강도의 가게는 개인장삿꾼들이 하는 가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격이 비싼 것이 그 이유입니다. 행정이 한다면 좀 더 싼 가격으로 운영을 할 것이라고 봐요. 그렇게 비싼 가격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방에도 존재한다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그런데서는 북한돈으로 거래를 하는 것인가요?

문성희: 적어도 제가 간 장소에서는 북한돈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어요. 평양에는 외화식당이라고 해서 외화로 지불할 수 있는 가게가 많지만 지방에서는 아직 거기까지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자연히 돈 지불은 북한돈으로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양강도의 상점에서는 중국돈밖에 쓰지 못한 것을 보니까 좀 모순이기도 하는데.

<기자> 평양에도 소박한 요리를 내주는 가게가 있어요?

문성희: 네, 현지 사람들이 좋아해서 가는 가게에 강냉이식당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리 재료는 모두 강냉이(옥수수). 인기 음식은 강냉이국수였고 술은 자져갈 수 있기 때문에 싼 상점에서 사서 가져갔어요. 강냉이국수는 별 맛이었어요. 요즘은 이탈리아식당 같은 곳에 현지 사람들도 가게 된 것 같은데, 제가 2011년에 이탈리아 요리 식당에 갔을 때는 100명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큰 가게에 손님은 저의 그룹과 더 하나 뿐이었어요.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피자나 파스타로는 배가 불지 않는다. 고 하고 있었습니다. 강냉이식당에서는 어른 4명의 식비가 120위안이었는데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적당한 가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오늘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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