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중∙러와 합작 추진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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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토론회 모습.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토론회 모습.
사진제공 :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은 북한 내 공장과 기업소에서 일고 있는 시장화 움직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북한 당국이 아무리 자력갱생을 강조해도 외국과 협력하지 않고 경제발전을 이루기란 매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문 박사님, 북한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를 꼽으라면 역시 중국과 러시아가 될 듯한데요.

문성희: 네 바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강력을 강조해도 북한이 자국의 힘 만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는 어렵지요.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문성희: 지난 2008년 한국의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직후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됩니다. 좀 있다가 개성관광도 중단됐어요. 남북의 교역액은 2008년의 18억2천만 달러로부터 2009년에는 16억 7천900만 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남북 경제 교류관계가 안 좋아지는 가운데 부상한 것이 중국이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아시리라고 봅니다. 마침 2009년에는 북중 국교 수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어요. 2009년에는 중국과 북한의 고위 관리들의 상호 방문도 활발해졌고, 그런 가운데 그   해 10월 당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회담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문 때 북중 경제기술협력에 관한 협정, 경제 원조에 관한 교환 문서 등의 경제 분야 합의서도 교환됐습니다. 식량, 원유, 석탄 등의 원조도 있었어요.

<기자>  이 시기에 북한에서 경제특구 관련 사업이 다시 활발해졌지요?

문성희: 네, 원자바오가 북한을 다녀간 2개월 뒤인 2009년 12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 위원장의 라선시 방문을 전했습니다. 다음해인 2010년 1월 4일에는 라선시를 특별시로 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고 라선경제무역지대법도 수정 보충됐어요. 경제특구에 관한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김정일 위원장은 2009년 8월에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의 서거에 즈음해서 북한 고위급 조문단을 서울에 파견하고, 북한을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는 등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나름대로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이를 계기로 북한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과의 경제협력 쪽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이 애초에는 남한을 경제협력 상대로 꼽았지만 잘 안 돼서 차선책으로 중국을 택했다, 이런 진단이시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기자>  그런데 중국 측에서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는 장점이 있었던가요?

문성희: 네, 뭐 제가 여기서 세삼스레 얘기할 것도 아닌데,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중국동북지역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지요. 이른바 ‘동북 진흥’ 정책인데 2009년 8월에는 국가전략으로 창춘, 지린, 투먼지역을 개발개방선도구로 하는 계획이 승인됐어요. 이를 추진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라진항과 청진항 사용권을 북한으로부터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습니다. 실제 2010년에는 지린성 훈춘에서 생산된 석탄을 라진항을 경유해 중국 상하이에 보내는 시운항도 진행됐습니다. 북한도 이를 이용해서 라선경제특구를 발전시키자고 생각한거지요.

<기자> 북한과 중국 양쪽의 이익이 서로 맞았군요?

문성희: 그렇다고 볼수 있지요. 여러분이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2010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이 안 좋은 데도 한 해에 2번(5월과 8월)이나 중국을 방문했는데, 이는 경제특구 공동 개발을 중국과 합의하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실제로 2010년 12월에는 중국과 경제특구를 공동개발, 관리하는 것으로 합의했지요. 제가 그 당시에 북한에서 합영추진위원회 간부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김 위원장이 중국에 갔다와서 이 문제가 풀렸다, 그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김 위원장은 2011년 5월에도 다시 방중했는데 이해 12월에 김 위원장이 사망했으니까 마지막 전력을 다해서 중국과의 경제특구 공동개발을 추진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 그런데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문성희: 러시아하고는 중국처럼 구체적으로 합의된 것은 현 시점에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한가지 실례를 말한다면 라선경제특구 개발계획 중 관광개발을 보면 북중러 국경지대를 염두에 두고 중국의 옌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 그리고 북한의 라선, 청진, 칠보산 등을 도는 코스 등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애요. 저도 한번 라선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는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두만강을 끼고 정말 양국과 가깝다는 것을 현지에서 느낄 수 있어요. 1996년에 라선, 그 당시는 라진-선봉이라고 했던데, 그 라선을 방문했을 때, 벌써 중국 관광객이 버스 관광을 하고 있었어요. 비파섬이라고 경치가 좋은 곳이 있는데, 거기에 버스로 방문했다가 하루 관광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1996년이라고 하면 마침 라진-선봉 경제특구 개발이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기자>  이미 관광이 시작돼있었다, 그런 말이지요? 라선 특구 부두도 러시아가 사용권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문성희: 네, 말씀하신데로 러시아가 부두 몇 군데의 사용권을 얻은 적이 있지요. 라진항이 부동항, 즉 얼지 않는 항구라서 러시아도 중국도 거기를 유통망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던 것이지요.

평양의 도심의 야경 모습 (2011년 9월).
평양의 도심의 야경 모습 (2011년 9월). 사진제공 : 문성희

<기자> 나진특구를 직접 가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진항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제가 나진항은 못 가봤어요. 청진항과 선봉항은 갔다왔는데,…. 그 당시 청진항도 러시아나 중국 사람들 한테 개방하려고 북한이 애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진항은 더 여러가지로 (청진이나 선봉항보다)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거기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었으니까 개방하는 게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기자> 항구를 외국에 오랜 기간 빌려주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북한 내부적으로 우려나 반대하는 분위기는 없었습니까?

문성희: 제가 1996년 당시 갔을 때는 전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가 김일성 주석이 라선을 첫 경제특구로 조성하라고 지시한 시기였기 때문이죠. 다만 장성택 처형을 전후로 ‘부두를 남에게, 라선을 외국에 팔았다’라든지 하는 얘기가 나돌았던 건 사실이지요.

<기자> 네 그러니까 외국에 오랜기간 항만을 빌려주던 걸 처음에는 문제삼지 않다가 장성택 처형이라는 정치적인 사안이 불거지니까 비난에 이용됐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문성희: 그런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현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걸 상상할 수는 있지요.

<기자> 그런데 경제특구 공동개발은 잘 진행되지 않았지요?

문성희: 이 사업을 맡았던 것이 장성택이었습니다. 2013년에 그가 처형당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중국과 경제특구의 공동개발도 추진이 안 됐지요. 다만 최근 북중 관계를 보니까 경제협력 측면에서도 기대를 가질 만한 움직임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구체적으로는 어떤 건가요?

문성희: 네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과 만났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북중관계의 회복을 상징한 방문이었다고 봅니다. 그 뒤 올해 1월까지 김 위원장은 3번 중국을 방문하고 그때마다 시진핑 주석과 회담했습니다. 제가 주목한 일은 지난해 5월에 있은 북한 고위 참관단의 방중입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박태성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참관단에는 평안북도와 평양시를 비롯한 북한의 모든 도, 시의 최고위 관리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일행이 방문한 곳은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알려진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관촌이었어요. 여긴 김정은 위원장이 그 해 3월에 방문한 곳이기도 합니다. 첨단농업기술 현장인 농업과학원 등도 방문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일행과 만났을 때, 박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본받아 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노선을 향하겠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이 경제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는 건가요?

문성희: 뭐, 갑자기 경제개혁, 개방 쪽으로 간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이 보도를 보고 1984년에 합영법이 설정된 시기를 떠올렸어요. 그 때도 전년도인  1983년에 방중한 김정일 비서(당시)는 심천, 상하이 등 개혁, 개방 정책의 거점을 방문했고 1984년에는 북한의 지방 간부 50여 명이 상하이, 심천 등을 1개월에 걸쳐서 시찰했습니다. 이 방문이 84년 합영법, 즉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외국과의 합작투자법, 설정에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중국식 개혁, 개방 정책을 도입할 신호가 아닌가? 그런 추측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자> 그런 기대가 맞았으면 좋겠는데요, 북한은 꼭 중국과 러시아하고만 경제협력관계를 추진시키려고 하는 건 아니죠?

문성희: 아닙니다. 제가 북한에서 만났던 사회과학원의 어느 교수는 “어느 한 나라에 의존하게 되면 그 나라와 협조를 할 때라든지 계약조건, 수송조건 여러가지 무역조건을 토의할 때 주도권을 쥐고 자기나라 요구에 맞게 내밀지 못한다. 경기변동 영향도 받고 협조할 때에 주동적으로 못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고 하면서 경제시장 확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의존했다가 중국과 관계가 나빠지면 경제도 어려워진다, 그런거죠. 그러니까 중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과 경제협력 관계를 추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그들이 말하는 ‘남시장’ 즉 발전도상나라들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나라 규모도 비슷하고 해서 거래를 하기 쉬운것이 아닌가 봅니다.

<기자> 북한이 여러 나라와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런데 지금 제재 때문에 잘 안 되고 있지 않나요?

문성희: 네 바로 그 문제가 가장 걸리고 있지요. 북한이 지난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생부문의 경제제재 완화가 꼭 필요한 거에요. 안 그러면 어떤 나라와도 경제협력관계를 추진할 수 없지요.

<기자> 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야 제재가 풀릴 수 있는 상황인데 대외 경제협력을 위해서라도 빨리 비핵화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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