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주체사상에 대한 소련의 시각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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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련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소련에서 북한의 위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소련에서 북한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 건 매우 적극적인 북한의 선전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조선화보를 비롯한 북한 선전 자료들은 10코페이카나 15코페이카로 아주 싼 값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 사람들은 북한 선전 자료를 보면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의심을 갖게 됐습니다. 특히 조선화보, 오늘의 조선, 러시아말 북한방송에서 내보낸 김일성에 대한 극찬은 역효과만 초래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에 소련사람들은 북한 선전 잡지와 방송을 통해 북한은 주민에 대한 감시가 엄격할 뿐만 아니라 세뇌를 하는 국가라는 것을 쉽게 느꼈습니다.

물론 당시 소련 사람들이 북한을 보는 눈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즈음 매우 심각했던 중국-소련 간의 분쟁이었습니다. 소련 사람들에게 북한은 모택동의 중국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적인 생각은 소련 사람들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공개된 소련 공산당 중앙 자료와 소련 외무성의 자료를 보면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1975년에 주 북한 소련 대사는 북한의 국내 정치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쓰면서 주체사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소부르주아 사상, 좌익 기회주의와 수정주의로 가득 찬 비과학적인 사상”이다.

당시 소련 당 간부 대부분은 주체사상에 대해 주 북한 소련 대사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소련 당 간부들은 주체사상을 가짜 거짓말 사상으로 봤다는 얘깁니다. 물론 당시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도 소련식 공산주의가 바로 수정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측은 상대방을 사상성이 부족한 수정주의자라고 서로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의 내부 사상 정치를 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자들은 북한 국내에서 소련식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을 가로막으려 아주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북조선 인민들이 소련 외교관이나 기술자로부터 소련 자료를 받으면 거의 즉각적으로 간부들에게 제출해야 했습니다. 또한 북한 당국자들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소련 사람, 특히 대북 경제 지원과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북한으로 파견된 소련 기술자, 전문가들과 자주 만나지 않으며 만났을 때도 많은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무렵의 소련에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소련에서 조선화보와 같은 북한 출판물들은 싼값에 작은 시골에서까지 잘 팔렸습니다. 소련을 방문한 북한 유학생, 기술자, 기타 방문객들은 소련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들이 김일성 선집이나 김일성 초상화를 소련 사람들에게 선물로 줬을 때 소련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예절을 지키기 위해 감사히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 KGB와 같은 소련 특무기관들은 주체사상의 확산을 가로막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은 왜 이런 차이가 있었을까요? 북한 당국자들은 소련식 사회주의가 주민들에게 매력적이라는 것 알았지만 소련 당국자들은 소련 주민 아무도 주체사상에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고, 조금도 주체사상을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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