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조총련의 흥망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05-28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5월 25일은 조총련이 생긴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 당국도 조총련에 축하편지를 보냈습니다. 북한 관영언론에서는 조총련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조총련이 여전히 힘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총련의 흥망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조총련은 재일교포들의 단체입니다. 1945년 해방 직후 여러 이유로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70만여 명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매우 심한 차별을 당했는데 대부분 돈도 없고 기술도 없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원래 재일교포 대부분은 일본 공산당을 비롯한 일본 좌파 단체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민족주의 정신이 강하고 갈수록 평양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 대부분이 남한 출신입니다. 하지만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권은 재일교포들을 무시했습니다. 또 재일교포 다수가 심한 좌익 경향이 있어 이승만 정권을 싫어했습니다. 결국 1955년, 조총련이 공식적으로 창단했을 때는 재일교포 절반 이상이 참가했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는 ‘민단’에 참가한 사람들은 훨씬 적었습니다. 당시 조총련은 진짜 힘이 많았는데요. 은행, 수많은 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있었습니다. 사실상 일본 안에 작은 북한이 생긴 것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960년대 초 재일교포 10만 명은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습니다. 또 1970년대까지 재일교포들은 여전히 조총련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상황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변화가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젊은 사람들은 일본사회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일본 교육을 받고 일본 사회에서 일하고 일본 사람들과 별 차이없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민족의식 때문에 이런 동화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젊은 재일교포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로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북한보다 남한에 대한 매력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포들은 1960년대까지 북한 생활을 미화하는 관영언론을 열심히 믿었지만 1970년대, 1980년대 들어와 그것은 그냥 선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가끔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남한은 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1970년대 말부터 재일교포들은 조총련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총련 지지자들은 1960년대 40만명 정도였지만 오늘날은 5만명도 안됩니다. 돈을 잘 버는 교포들은 원래 조총련에 돈을 많이 냈지만 지금은 내지 않습니다.

치명적인 타격은 또 있었습니다. 2002년에 북한 정권은 1970년대, 1980년대 일본인들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과는 반대의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납치 사실을 매우 격하게 부정해왔는데,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인정한 순간, 그들이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된 것입니다. 결국 일본에서 북한 그리고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에 대한 반감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조총련은 빚이 많고 심지어 몇년 전엔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까지 경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조총련은 일본에서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