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대북 정보유입과 문화교류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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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쏘련(소련)과 동구라파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이 무너진 지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북한의 김씨 일가 정권은 냉전시대 이후 30년 넘게 생존해 온 것 뿐만 아니라, 1994년7월, 2011년12월, 두번이나 권력세습을 이뤘습니다. 김씨 일가의 생존 비법은 주민들의 인권, 자유, 인간 안보를 희생시키면서 정치적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중국, 윁남(베트남)식 경제개혁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생존하기 위해 바깥세계의 정보를 차단했고 북한 주민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북한 지도자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은 얼마 전까지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 북한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선전을 담당했습니다. 또 김여정 제1부부장은 외국라디오방송이나 다른 수단으로 바깥세계의 정보를 접촉하다 붙잡힌 주민들을 처벌하는 데도 관여했습니다. 북한은 유엔 가입국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정보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합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한 주민들이 누려야 할 정보의 자유를 사악하게 탄압하는데 큰 책임이 있어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3만3천 여 명 정도입니다. 그들 중에는 대북 라디오 방송국이나 대북인권단체를 설립해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를 통해서, 또 북한의 암시장에서 팔리는 Micro SD카드나 USB 등 여러 저장장치를 통해 한국과 바깥세계의 정보를 북한으로 유입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북한 정부는 북한이란 나라가 코로나 19 감염자가 한명도 없는 모든 주민들이 풍요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지상낙원이라 주장합니다. 북한이 주민들의 복지, 보건위생, 인권이 그렇게 완벽하게 보장된 나라라면 김씨 일가 정권은 왜 바깥세계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를 그렇게 두려워 하는걸까요? 북한에서는 한국 드라마, 한국 음악,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인기 배우들에 의해 유명해진 옷차림과 머리스타일, 머리 염색 등이 특히 북한 부유층과 평양외국어대학, 평양음악무용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또한 북한 당국은 이러한 '자본주의 문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북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복장 단속을 강화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아파트 전기 스위치를 통째로 끄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주민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고 한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로부터 들어오는 문화적 영향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이와 관련된 법조항을 대거 신설했고 형량도 다른 범죄에 비해 높게 책정했습니다. 실제로 청진시를 포함한 북한 도시에서 한국 드라마를 대량 복사해 유통시킨 젊은이가 공개 처형당했고 신의주세관 간부들이 한국 비디오 반입을 눈감아주다 수용소로 직행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외국이나 한국 영화, 음악, 춤, 그림, 사진이나 도서 녹화물이나 관련 저장장치를 허가 없이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거나 만들거나, 봤거나 들었을 경우 2년 이하 노동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또 북한의 정책을 비판하는 외국방송을 정기적으로 들었을 경우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 허가 없이 외국 인쇄물이나 녹화물을 보거나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을 매춘, 마약, 뇌물이나 문화유적 도굴과 도난 사례와 같이 불법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매춘, 마약이나 절도행위는 엄한 처벌대상입니다. 그러나 외국과의 비공식적인 문화교류를 그와 같은 수준의 범죄라 여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 로므니아(루마니아) 시대가 떠오릅니다. 과거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도 민주주의 국가와의 문화교류를 많이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식량 부족 때문에 고통을 겪고 살던 로므니아 주민이 민주주의 국가의 문학, 음악과 정치 문화를 알게 되면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자와 그의 가족, 또 공산당 간부들과 ‘세쿠리타테’ (Securitate)라는 국가안전보위부는 로므니아 주민들이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공식적인 문화 교류에 나서는 일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위부가 발급시킨 허가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권을 얻어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그러나 보위부에 의한 감시와 정치 탄압, 인권 유린이 아주 심하던 공산국가였던 로므니아에서 조차도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외국 영화를 본 자들을 모두 단속해 처벌하지는 못했습니다. 인권탄압국가이던 공산주의 시대 로므니아에서 '자유유럽방송'과 '미국의 소리'와 같은 외국 방송을 듣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그런 방송을 들은 것으로만 구속을 당한 사람들은 많진 않았습니다.

거의 온 국민이 그런 방송을 들었기 때문에, 공산당 간부, 보위부와 보위부의 밀고자를 빼고, 2천3백만 명의 주민을 모두 체포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를 남들과 나눴을 경우 보위부에 알려지게 되면 당연히 구속됐습니다.

당시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끝까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드리지 않고 나라를 고립시키려 했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 로므니아는 체스꼬슬로벤스꼬(체코슬로바키아), 마쟈르(헝가리)나 동독처럼 평화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한 나라를 고립시켜 다른 나라와의 비공식적 문화교류를 금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북한이 21세기 세계화된 지구촌에서 생존하려면, 또 21세기 국제사회에 합류하려면 민주주의 국가의 긍정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그들과의 비공식적 문화 교류를 충분히 허용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을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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