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로므니아와 한국 수교 30주년 기념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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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로므니아(루마니아)와 한국은 수교 30주년을 맞이합니다. 냉전 시대 때 로므니아는 같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이던 북한과만 외교관계가 있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48년9월9일 설립된 지 한달 쯤 지난 1948년 10월28일 로므니아와 북한은 수교했습니다.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1971년6월15일 평양에서 처음 만난 후 두 독재자는 아주 친밀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차우셰스쿠와 아내 엘라나가 총살을 당한 1989년12년25일 후 로므니아는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로 향하는 전환기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은 로므니아에 첫 번째 투자를 한 외국 투자국이었습니다. 한국의 대우그룹은 1990년대 중반부터 로므니아 자동차와 조선, 중공업에 대규모 직접투자를 했습니다. 로므니아와 북한의 관계, 또 로므니아와 한국의 관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1947년부터 1989년까지 로므니아도 북한처럼 공산주의 독재 국가였습니다. 특히 1965년부터 1989년까지 차우셰스쿠 정권 때 공산주의 정부는 인권을 심하게 유린했고, 경제 상황도 많이 악화된 가운데 온 국민이 식량 부족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았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로므니아와 북한 정부의 사이는 아주 가까웠습니다. 예를들면, 한국전쟁 때 로므니아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북한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명한 로므니아 군의관이 김일성과 김일성 주변에 있는 북한 장교들까지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 로므니아의 수도 부꾸레쉬띠(부카레스트)를 평양처럼 군중들이 모여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광장, 거리와 커다란 건물이 있는 도시로 바꿔 놓으려 했습니다. 또 로므니아의 독재자는 북한처럼 '주체사상'을 로므니아에 투입시키려 했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도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차우셰스쿠와 김일성, 로므니아와 북한 양국 정부 차원의 사이는 좋았어도, 양국 국민들끼리의 교류는 많이 없었습니다. 북한에 거주하던 로므니아 외교관들은 북한 사람들을 공무 때문에 만날 수 있어도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유학 중인 로므니아 대학생들은 1950년대 후반까지 북한 학생들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로므니아 유학생들은 북한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유학생들끼리만 공부하곤 했습니다. 로므니아에 있는 북한 유학생들도 로므니아 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부꾸레쉬띠 대학시절을 생각해 보면, 북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없던 것 같습니다. 북한 대사관의 감시가 심해서, 북한 학생들끼리만 항상 어울려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1989년 로므니아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3개월 후 로므니아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때부터 로므니아와 한국의 관계는 로므니아와 북한의 관계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 기관이나 공무원, 기업가들끼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외교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로므니아에 첫 번째 투자를 한 외국 투자자였습니다. 1990년대 특히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로므니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대성공을 이루었습니다. 1990년대 로므니아에서 생산된 대우자동차는 유럽, 미국, 그리고 일제자동차와 로므니아 시장에서 심한 경쟁을 하더라도 로므니아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가장 좋은 국민차로 인정되어 있었습니다. 대우그룹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어려움에 빠져 미국 포드 (Ford) 자동차가 로므니아에 위치한 대우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2000년 이후 프랑스 르노 자동차와 미국 포드 자동차는 로므니아에 합작 투자에 성공했습니다. 로므니아에서 생산된 ‘르노 다치아’ 자동차는 로므니아에서 잘 팔리는 것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로 많이 수출되고 있습니다.

로므니아와 한국의 무역과 경제 교류가 이렇게 활발할 뿐만 아니라, 양국 간 민간 외교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로므니아와 한국의 국제결혼 부부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관광객들은 유럽을 여행할 때 로므니아도 많이 방문하고, 로므니아 사람들도 한국 관광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구라파 여행을 많이 즐기는 한국 관광객들은 로므니아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고전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역사적인 유물을 관람할 수 있고, 로므니아 전통 인형, 장식품, 전통악기 팬 플루트, 장식되어 있는 부활절 달걀과 아름다운 꽃병까지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로므니아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1980년 중반부터 한국의 외국어대학에서 수백 명이 로므니아어를 전공해 왔고, 1990년 중반부터 로므니아 대학생들도 로므니아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 교수들에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 한국정부 초청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서 공부한 첫째 로므니아 학생이었습니다. 한국 대학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처음으로 받은 로므니아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로므니아에서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고, 로므니아에서도 한식집이 생겨 로므니아 사람들도 김치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김치의 맛을 본 모든 로므니아 사람들은 맛있다고 했고 다시 먹고 싶어 합니다. 또한 한국의 ‘한류,’ 즉 한국 음악, 영화나 TV드라마는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언젠가 북한도 경제, 정치, 사회 개혁의 길을 선택해 북한 사람들도 자유롭게 여행하고 외국인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특히 젊은이들끼리 서로 어울리며 로므니아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로므니아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으로 향한 개혁의 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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