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노병(老兵) 류병현 장군의 별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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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1951년 4월 19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사령관으로 재임하다 퇴역하여 귀국한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말이었습니다. 화창하게 피어났던 봄꽃도 때가 되면 떨어지듯 나 또한 세상의 순리에 따라 때가 되어 물러나지만 내가 품었던 군인정신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다...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지난 5월 21일 한국에서는 각종 전투를 치르면서 평생을 참군인으로 살았던 류병현 육군 예비역 대장이 향년 97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류 장군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 제7기 졸업생으로 소위로 임관해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제15보병사단장, 주베트남 맹호사단장, 제5군단장, 대간첩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참의장 등 군 요직들을 두루 역임한 한국군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해박한 군사지식과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춘 류 장군은 퇴역 후에는 주미 한국 대사로 재직했습니다.

류병현 장군의 군인정신은 90세이던 2013년에 집필한 그의 회고록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회고록에는 1974년 제5군단장 시절 철원지역에서 북한 땅굴 탐지작전을 지휘하여 제2땅굴을 발견한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파놓은 땅굴을 발견한 것은 그 전에도 여러차례 있었지만, 파고 있는 땅굴의 방향과 깊이를 예측하여 대응 땅굴을 파서 옆구리를 치고 들어간 일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류 장군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한미연합사를 창설한 것을 특히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류 장군은 1968년 북한군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 사건, 미국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닉슨 대통령의 괌독트린에 따른 1971년 미 7사단 철수, 1976년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등을 거치면서 동맹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를 창설했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와 1980년 5·18 항쟁이 발발했을때 합참의장으로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헌정 중단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들도 냉철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5•18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류 장군은 과거 북한군 무장공비들이 주로 변산반도에 상륙해 광주와 지리산 지역으로 침투한 것을 감안하여 해군참모총장에게 해군의 가용한 전력을 변산반도 쪽으로 돌려 침투를 예방했고, 위컴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일본에 있는 미 7함대 항공모함전단을 한국 해역에 파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류 장군은 회고록을 통해 군 합동성 강화, 참모총장 임기 및 인사권 보장, 부사관 우대 등 강군을 육성하기 위한 각가지 방안들도 제시했습니다. 또한, 잘못된 책임은 자신이 맡고 잘된 공(功)은 동료에게 넘기면서 국가가 부여한 과업은 반드시 달성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떠안아 국가엔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실천하면서 살아왔던 공직자의 품격과 애국심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군생활을 마치고도 죽을때까지 조국을 사랑하다가 사라져가는 노병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13년에 별세한 채명신 장군, 2016년에 별세한 '한국군 DMZ 도발 응징’의 주역 박정인 장군과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김신 장군, 2019년에 세상을 떠난 공정식•강기천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최근에 국민 곁을 떠나간 노병들이 많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6•25 참전용사이자 베트남전 당시 파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용맹을 떨친 참군인이었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서울 현충원의 사병묘역에서 영면했습니다. 공정식 장군 역시 6·25 참전용사로서 수륙을 누빈 해병대의 덕장이었습니다. 박정인 장군은 철원지역 3사단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3월 7일 북한군이 총격도발을 가해오자 도발 원점인 북한군 초소를 향해 강력한 포격으로 응징하여 일화를 남겼던 용감한 군인이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에너지를 조국에 쏟아붓고 떠나간 참군인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존경과 감사의 경례를 올려야 마땅한 노병들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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