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강화도조약 144주년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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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년전 오늘, 그러니까 1875년 병자년 2월 26일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이날은 조선과 일본이 최초로 통상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날이자, 한반도 근대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이 조약으로 당시 조선의 쇄국정책이 막을 내렸기 때문에 근대화의 출발선이기도 하지만,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결국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강화도 조약을 말하려면 1년 전에 있었던 운양호 사건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부국강병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 거점을 마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1873년 조선에서 쇄국정책을 고집하던 대원군이 권력에서 물러나자 일본은 조선을 개항시키고자 군함을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벌렸고, 1875년 9월 21일에는 군함 운양호를 강화도로 보내 초지진과 영종진에 포격을 가하고 육전대를 상륙시켜 조선군 35명을 사살하고 각종 무기들을 약탈합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조선에 개항을 강하게 요구했고, 결국 1876년 2월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를 파견하여 통상수호조약을 강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것이 바로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즉 강화도조약인 것입니다.

일본이 무력을 앞세우고 체결한 강화도조약은 당연히 불평등한 조약이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조선은 양국 상인들 간 왕래가 있었던 부산이외에 인천과 원산을 개항했는데, 곳곳에 불평등한 내용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제1조에서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명시한 것은 한반도에 기득권을 행사해온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고, 원산항을 개항하기로 한 것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었있습니다. 제7조는 일본의 선박들이 조선의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역시 불평등한 내용이었습니다. 제10조에서는 양국 일본에서 죄를 진 조선인과 조선에서 죄를 진 일본인을 자국으로 돌려보내 재판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일본을 방문하는 조선인보다 조선을 방문하는 일본인이 훨씬 더 많다는 점에서 그리고 외교관이 아닌 일반인에게 치외법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일본에게 유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 왕조에는 일본의 근대화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일 개혁파들이 영향력을 키웠고 그 연장에서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는데, 1882년, 즉 고종 19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은 조선의 구식 군대가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항의하면서 조선 왕조에 대해 일으킨 군란(軍亂)이었습니다. 이 군란을 계기로 조선왕조가 다시 청나라로 기우는가 싶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친일개혁파들은 1884년 청나라가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대립하면서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의 일부를 철수시킨 것을 기회로 삼아 일본군의 지원 하에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데 이것이 갑신정변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3일천하로 끝나고 맙니다. 개혁파에 밀렸던 명성왕후 민씨 왕비가 청나라의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 장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원세개가  서울에 남아있던 군대로 반격을 가하여 일본군을 몰아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개혁파 홍영식은 청군에게 사살되었고,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친일 개혁파 9명은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렇듯,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은 한반도에서 불리한 위치로 전락했지만, 9년후인 1894년 조선에서 동학난이 발생했을 때 다시 파병을 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청나라와의 충돌을 가져와 청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청일전쟁은 1894년 8월부터 1895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조선과 만주를 무대로 벌어지는데, 이 전쟁에서 일본은 지상전과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청나라의 북양함대는 궤멸되고 맙니다. 이후 1885년 일본은 일본군과 일본인 폭도들을 경복궁에 침입시켜 친청파인 명성왕후 민씨를 살해합니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또다시 승리함에 따라 일본은 조선을 둘러싼 경쟁에서 최종 승리자가 되고,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통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맙니다.

물론, 한반도의 비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한반도는 북쪽의 공산주의 북한과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분단되었고, 오늘날 일본은 자유민주의국가가 되어 태평양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던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되어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는데 협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한반도의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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