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맥아더 장군에 대한 회고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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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많은 것들을 되새기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그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을 회고해 보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일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1880년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의 한 병영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육군 중장까지 지낸 군인이었고, 아버지의 군인정신을 이어받은 맥아더는 13세때 텍사스 군사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 육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곱 차례나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38세에 최연소 장군이 됩니다. 50세가 되던 1930년에는 대장으로 승진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지냅니다. 맥아더 장군은 57세이던 1937년에 예편했으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현역으로 복귀하여 필리핀 주재 미 극동군 사령관을 지냈고, 일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필리핀을 해방시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무렵 원수로 진급한 맥아더는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을 군정 통치했고, 그러던 중에 6·25 전쟁을 맞이합니다. 이때 맥아더는 이미 70세의 노인이었지만 군인으로서의 그의 지략과 용맹은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자 6월 27일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도쿄에 있는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 해군과 공군에 대한 지원을 즉각 개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북한군이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한 그 다음날인 6월 29일, 맥아더는 공군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와 한강 방어선을 둘러보고 돌아가서는 미국 정부에 지상군 투입을 건의했고, 이후 미 지상군이 속속 파병되어 유엔군의 깃발 아래 전투를 개시합니다. 하지만, 북한군은 남침 한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이 던진 승부수가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 미 합참의 장군들은 인천이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고 수로가 복잡하여 상륙작전이 성공할 확률은 5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고, 인천 대신 아산, 주문진, 군산 등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80여 회에 이르는 상륙작전을 펼쳤던 맥아더는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믿고 인천 상륙을 관철시킵니다. 그리하여 9월 15일 유엔군측 함정 261척이 미 제10군단, 미 해병 1사단, 한국군 제17보병연대, 해병 제1연대 등 7만 5천의 병력을 인천에 상륙시킵니다. 그것이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는 완전히 뒤집히고 보급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북쪽으로 패주합니다. 이후 북진을 개시한 한국군과 유엔군은 단숨에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에 도달하지만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옴에 따라 다시 서울을 내주고 37도선까지 후퇴합니다. 이후 유엔군은 재반격을 통해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 이남을 다시 장악하지만 이때부터 전선은 한반도 중부에서 교착되었고,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 밀고 밀리는 지루한 공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트루만 대통령은 1951년 4월 11일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에서 해임하고 후임에 리지웨이 중장을 임명합니다. 이는 맥아더 장군과 트루만 대통령 사이에 이견과 갈등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맥아더는 중국 본토의 봉쇄와 폭격을 포함한 전쟁 확대를 요구했고, 필요하다면 중국군에 대한 핵사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루만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은 6·25 전쟁이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결국 소련도 참전해 3차 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도쿄로 돌아간 맥아더는 4월 16일 미 극동군 사령부에서 퇴역식을 마치고 하네다 공항으로 가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데, 그것이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 등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맥아더 장군이 군복을 입었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맥아더 장군은 기업 회장직을 맡기도 했지만 주로 뉴욕 시내의 자택에서 은거생활을 했고, 1964년 워싱턴에서 85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오늘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 주었던 미국의 명장 맥아더 장군을 회고해보았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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