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민주주의 여인상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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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이맘때 였습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 중심에 있는 천안문 광장에 높이 10미터의 거대한 조각상이 들어섰습니다. ‘민주주의 여신상’입니다. 이 여인상은 닷새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수 십만 중국 청년들의 환호 속에 서 있었지만 6월 4일 중국 인민해방군 탱크가 파괴했습니다. 중국 천안문 민주화 운동의 막을 내리던 그 날입니다.

민주주의 여신상은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제작했는데요.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었답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 즉 호요방의 사망을 계기로 베이징의 대학생들과 노동자 10만 여 명이 민주주의와 자유, 언론의 자유, 교육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1989년 4월 22일부터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지요. 투쟁이 한 달을 넘어서고 5월 중순으로 접어 들면서 참가한 학생들은 지쳐가고 시민들은 지저분해지는 천안문 광장을 보며 민주화 투쟁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운동의 지도부는 국가개혁을 위한 시민의 목소리를 결집시킬 기회를 다잡을 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상징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술대학의 학생들은 구 소련의 선전물인 ‘노동자와 콜호즈 여인상’의 몸체와 얼굴 모양을 차용해서 여신상을 제작했습니다. 철근으로 뼈대를 세우고 스티로폼이라고 불리는 폴리스티렌과 종이 반죽을 이용했고, 횃불을 양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민주주의 여신상’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던 중국 당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훼방을 놓았지만 시민들의 저지 덕분에 학생들은 5월 29일 해질녁에 천안문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천안문에 높이 10미터의 순 백색 ‘민주주의 여신상’이 우뚝 서게 됐습니다. 등소평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는 천안문과 ‘인민영웅기념비’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의 열의를 담은 이 조각상을 세계 여러 언론들이 촬영해 내보냈는데요. 언론들은 이를 두고 ‘여신과 주석의 조용한 대치’라고 묘사했습니다. 30일 제막식을 치르자 모여있던 수만 군중들은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이 조각상이 천안문 광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1만 명이 채 안 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는데 여신상이 들어선 후 30만의 시민들이 모여 민주화 투쟁에 힘을 보탰습니다.

앞서도 설명드렸듯이 6월 4일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탱크를 동원해 천안문 광장으로 몰려와 민주주의 투쟁을 진압하면서 여신상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단 5일간 존재했던 민주주의 여신상을 지금은 전 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1994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동으로 만든 여신상이 들어섰습니다. 동상의 제단에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분들에게 바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답니다. 캐나다의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교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민주주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대만과 홍콩에도 천안문의 민주주의 여신상을 본 뜬 동상들을 세우고 31년 전 천안문에서 희생된 청년들이 애타게 그리던 ‘민주주의 정신’을 잇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미국의 재단 NED가 매년 세계 여러나라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에게 주는 ‘민주주의 상’이 있는데요. 이 상의 상패가 바로 천안문 광장에 세워졌던 ‘민주주의 여신상을 그대로 본 뜬 작은 모형입니다.

천안문 여신상을 본 뜬 사례가 또 있습니다.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 기간에는 ‘민주주의 여신상’을 변형한 모양을 활용했습니다. ‘홍콩 자유의 여인상’입니다. 천안문의 정신과 동력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홍콩시민들은 ‘홍콩 자유의 여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은 홍콩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광복 홍콩, 시대 혁명’ 이라는 글자가 적힌 검은 색 깃발을 휘날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안전모를 쓰고 방독면을 착용한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난 해 말에 격렬하게 벌어졌던 홍콩 시민들의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여인상 하나로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지난 28일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에 대한 국가보안법을 찬성 통과 시킨 이후 홍콩 시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다시 거리투쟁을 시작했는데요. 부디 '홍콩 자유의 여인상’이 건재하기를 그리고 홍콩의 수준 높은 문명이 중국당국의 전체주의에 짖밟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31년 전 천안문 광장의 민주화 투쟁은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의를 요구하는 가치와 정신은 어떤 형식으로든 역사와 함께 숭고히 전해진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퍼진 민주주의 여인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안문 민주주의 여신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날을 생각해보며,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는 ‘민주주의 여인상’이 들어설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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